
[프라임경제] 서울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한층 격화되고 있다. 초고층 건물 건설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의 '시각적 완전성'을 훼손해 결국 등재 취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오히려 낙후된 일대가 정비되면 종묘의 가치가 강화될 것이라는 서울시의 주장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세운4구역에는 종로변 최고 98.7m, 청계천변 141.9m 규모의 고층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며, 이는 오세훈 시장이 추진하는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의 핵심 사업 중 하나다. 민간 개발을 유도해 녹지를 확충하고, 그에 따른 규제 완화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도시개발과 환경 보전을 동시에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해당 부지가 종묘와 직선거리 약 180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점이 논란의 중심이다.
199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종묘는 조선과 대한제국 왕실의 제례를 모시던 국가 사당으로, 세계유산 기준 가운데 하나인 '시각적 완전성'을 중요하게 요구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은 주변 경관이 종묘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세계유산 주변 개발이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훼손한다고 판단될 경우 유네스코는 해당 유산을 '위험에 처한 유산'으로 지정하고, 개선이 없으면 등재를 취소할 수 있다. 이미 영국 리버풀의 '해양 상업 도시', 독일 드레스덴의 '엘베 계곡'이 비슷한 이유로 세계유산 지위를 상실한 바 있다. 이런 전례는 종묘 일대 재개발 논란에 더욱 무게를 싣고 있다.
반면 서울시는 종묘로부터 떨어질수록 건물 높이가 단계적으로 증가하도록 설계했고, 세운4구역 자체도 문화재 지정 구역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문화유산적 가치를 해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대법원 역시 "서울시의 고도 규제 완화가 위법하지 않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며 시의 손을 들어줬다.
◆종묘 앞 개발 '정면충돌'…세계유산지구 지정으로 긴장 최고조
이번 갈등의 뿌리는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오세훈 시장은 종묘와 남산을 녹지로 연결하고 양측에 고층 건물을 배치하는 '세운녹지축' 구상을 내놓았지만, 문화재청이 종묘 경관 보존을 이유로 건물 높이를 75m로 제한하자 사업성이 낮아져 추진이 답보 상태에 빠졌다. 이후 박원순 시장 시기에는 도시재생 중심 정책으로 전환되었다가, 오 시장이 복귀하면서 세운녹지축 사업이 다시 본격화됐다.
이에 학계와 문화유산 전문 단체들은 서울시의 고층 개발 계획을 공동 비판하고 나섰다.
한국고고학회와 한국건축역사학회 등 27개 학회와 6개 문화유산 관련 협회는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종묘의 하늘과 시야를 가리는 무리한 고도 완화는 세계유산을 훼손하는 행위"라며 즉각 중단을 요구했다. 여러 학문 분야와 유관 단체가 한목소리로 확보된 기자회견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반면 세운지구 주민들은 이와 정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세계유산 보호구역에도 속하지 않는 세운4구역이 오히려 과도한 규제를 받고 있다며, 국가유산청의 인허가 지연으로 누적 채무가 7250억원까지 늘었다고 호소했다. 일부 주민들은 국가유산청의 행정이 부당했다며 손해배상과 직권남용 책임까지 묻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갈등 속에서 국가유산청은 종묘 일대 약 19만4000㎡를 '세계유산지구'로 신규 지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국가유산청 문화유산위원회 세계유산분과위원회는 13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회의를 열고 '종묘 세계유산지구 신규 지정 심의' 안건을 의결했다. 세계유산법에 따라 지정된 지구에서는 유산의 가치를 침해할 가능성이 있는 개발이 제한되며, 향후 종묘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업은 세계유산영향평가 대상이 된다.
특히 이번 지정은 서울시의 고층 개발 추진과 맞물려 있어 향후 재개발 계획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종묘 일대 개발을 둘러싼 논란은 단순히 높이 규제의 문제가 아니라 서울 도심의 미래 방향성과 세계유산 관리 기준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향후 국가유산영향평가 결과와 세계유산지구 지정에 따른 규제 범위가 재개발의 향배를 가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