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위크=김두완 기자 헌신이란 착각이 ‘검란’과 ‘정쟁’을 불렀다. 대장동 항소 포기 사태의 중심에 선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이 14일 퇴임식을 끝으로 자리를 떠났다. 그는 항소 포기 결정이 조직을 위한 결단이라고 주장했지만 그 판단이 어떻게 내려졌는지에 대한 진실은 끝내 밝히지 않았다.
진실이 사라진 자리는 혼란이 채웠고 검찰 내부의 집단 반발과 정치권의 공방이 맞물리면서 국민 전체가 대장동 논란의 소용돌이로 끌려 들어갔다. 결국 검찰 조직에 남은 것은 깊어진 불신과 ‘정치검찰’이라는 지울 수 없는 낙인뿐이다. 책임자는 떠났지만 밝혀야 할 진실은 그 자리 그대로다.
◇ 고장 난 ‘정치검찰’ 계산법
노만석 대행의 사퇴는 검찰 내부에서 거센 책임론이 분출한 지 닷새 만에 이뤄졌다. 그러나 그가 사퇴로 향하는 과정 전체는 오히려 검찰 스스로 신뢰 기반을 허물어뜨리는 시간에 가까웠다는 평가가 나온다. 항소 포기 직후부터 검사장·지청장·평검사들까지 줄줄이 성명을 내며 사실상 항명에 가까운 책임 추궁을 이어갔지만 노 대행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사이 검찰은 ‘선택적 분노’라는 여론의 비판에 직면했다.
지난 정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항고 포기나 김건희 씨의 ‘출장수사’ 논란에는 침묵하던 검사들이 왜 이번 대장동 사건에만 집단행동에 나섰냐는 지적이 터져 나왔다. 그 결과 검찰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의심은 더 커졌고 국민은 특정 사안에 따라 내부 기류가 달라지는 이중 잣대를 목격해야 했다. 일선 검사들의 반발은 의도와 무관하게 ‘정치적 행동’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노 대행의 ‘입’이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법무부 외압이 있었는지가 이번 논란의 핵심이었지만 노 대행은 외압을 암시하는 듯한 발언과 이를 부인하는 언급을 번갈아 내놓으며 혼란만 키웠다. 그는 “전·현 정권 사이에서 많이 부대꼈다”고 말해 정치적 개입 가능성을 스스로 언급하면서도 정작 퇴임식에서는 이를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 법무부는 “지휘권 발동은 없었다”고 맞서며 노 대행의 주장과 정면충돌했다. 국민은 두 기관의 엇갈린 해명 속에서 무엇을 믿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결정적으로 노 대행이 흘린 ‘외압’ 뉘앙스는 제도적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모순을 낳았다. 법무부 차관은 검찰총장 또는 총장 직무대행에게 수사지휘권을 행사할 권한이 없고, 지휘권은 오직 장관에게만 있다.
그럼에도 노 대행은 마치 법무부가 자신에게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 듯한 메시지를 남겼다. 이는 결국 그가 의도적으로 정치적 해석의 여지를 남긴 것 아니냐는 의심을 낳았고 본인이 말한 “정치적 오해를 피하고 싶다”는 주장과도 정면으로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그대로 정치의 한복판으로 내던져졌다. 외압 여부를 둘러싼 혼선은 여야 공방을 격화시켰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사안을 “검찰의 집단 항명”으로 규정하며 일선 검사장 16명에 대한 감찰과 보직 해임을 요구했다. 민주당은 14일 검찰징계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항소 포기 경위를 요구한 검사들을 정면 겨냥했고, 법무부에도 즉각 감찰을 촉구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이를 “정권의 검찰 길들이기”라고 규정하면서도 외압 의혹에 대한 명확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맞섰다.
노 대행이 만든 모호한 서사는 결국 검찰 조직을 지키기는커녕 정치권의 진영 간 정쟁을 부르며 ‘검찰의 정치적 독립성’ 자체를 무너뜨렸다. 퇴임식에서 “검사 징계 논의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던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공허하게 들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작 그 혼란의 출발점이 바로 그의 선택과 그의 말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검찰 내부에서도 이번 사안이 단순히 ‘대행의 사퇴’로 끝날 일이 아니라는 기류가 강하게 감지된다. 내부망에는 “대검 차장과 서울중앙지검장의 사퇴만으로 사태가 봉합될 수 없다”는 취지의 글들이 잇따라 올라온 것으로 전해졌다. 항소 포기 결정 과정에서 법무부와 대검 지휘부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실제 의사 결정 구조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는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는 핵심 논란이 여전히 규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으며 이번 사태의 후폭풍이 노 대행의 사퇴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노 대행의 퇴장은 사건의 종결이 아니다. 항소 포기 결정의 경위는 여전히 베일 속이고 의혹은 정리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그는 ‘조직을 위한 결정’이라 강조했지만, 그의 침묵은 조직의 혼란과 정치적 부담을 더 키웠다. 검찰 수장의 책임과 설명이 사라진 자리는 국민 불신으로 채워졌고 검찰은 다시 ‘정치검찰’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됐다. 노 대행이 남긴 것은 검찰을 정치 한가운데로 밀어 넣은 채 홀로 빠져나간 지도자의 빈자리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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