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부산 박성규 기자] 지스타 2025 G-CON 무대에 호리이 유지가 등장하자 강연장은 즉시 달아올랐다. 일본 RPG의 상징이자 ‘드래곤 퀘스트’의 창조자로 불리는 그는 “부산은 정말 오랜만”이라고 운을 떼며 자신의 창작이 어떤 경로를 거쳐 지금의 시리즈로 이어졌는지 차분한 목소리로 풀어냈다.
호리이 유지는 14일 부산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열린 지스타에서 어린 시절 만화를 그렸던 기억으로 강의 운을 뗐다. “만화는 일방적이다. 하지만 게임은 플레이어와 함께 움직이는 인터랙티브 매체”라고 말하며 문자로 진행되는 초기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던 경험, 컴퓨터를 접하고 세계를 설계하기 시작했던 순간을 잇달아 회상했다. ‘드래곤 퀘스트’를 대사 중심 구조로 설계한 이유도 “누구나 쉽게 들어올 수 있는 진입 장치”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플레이어 이름을 게임 안에서 직접 불러주는 구조가 탄생한 배경도 공개했다. “그 시절 TV는 보는 매체였다. 그런데 게임은 주인공 이름을 내 손으로 입력하고 그 이름을 계속 불러준다. 이것이 감정 이입을 크게 만든다.” 이 구조는 이후 JRPG 전반의 몰입 방식으로 자리 잡은 개념이다.

호리이는 자신이 ‘창작자’인 동시에 꾸준한 ‘게이머’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구하듯 게임을 하는 편이 아니다. 그냥 즐긴다”고 말했다. 특히 ‘젤다의 전설’을 언급하며 “액션성과 탐험의 자유로움이 인상 깊었다”며 당시 오픈월드라는 개념을 직관적으로 체감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이후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세계 설계에도 영향을 준 요소다.
시리즈가 계속될 수 있었던 배경도 강연의 중요한 흐름 중 하나였다. 그는 “드래곤 퀘스트 3는 하나의 사회현상이었다”며 “기대치가 높아지면서 이후 작품을 만들 때는 캐릭터를 어떻게 살릴지 가장 많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드래곤 퀘스트 4에서 개별 캐릭터의 서사를 강화한 이유도 여기에 맞닿는다. 그는 “사람들은 종종 스토리는 잊지만, 캐릭터는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리메이크 철학을 묻는 질문에서는 제작자의 고집과 팬덤에 대한 배려가 동시에 드러났다. 그는 “초기 작품은 텍스트도 적고 표현도 제한적이다. 그대로 다시 내면 부족해 보일 수 있다”며 “핵심을 유지하되 지금의 플레이어가 느낄 템포 등을 새로 조정하려 한다”고 말했다. 최근 출시된 ‘드래곤 퀘스트 3 리마스터’ 이후 1·2를 연달아 선보인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덧붙였다.

창작 동력을 묻는 질문에 그는 오랫동안 간직해온 문장을 꺼냈다. “인생도 RPG다. 힘든 일이 생기면 ‘이것도 언젠가 클리어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해본다.”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감정이라며 경험이 추억으로 쌓이는 것이 바로 “게임이 가진 무형의 유산”이라고 표현했다.
강연 말미에는 후배 창작자들에게 조언도 전했다. “아이디어는 머릿속에 있을 때는 모두 걸작이다. 하지만 꺼내 현실에 구현하는 순간부터 어려움이 시작된다”며, “실패해도 좋다. 그 실패조차 공부가 된다. 유형의 형태로 만들어보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첫 기획서를 쓰고 그림을 그리 설정을 적어내는 과정이 “가장 즐거운 순간”이라고도 말했다.
지스타 현장에 모인 수백명의 청중은 강연 내내 메모를 멈추지 않았다. JRPG의 뿌리를 만든 인물이 직접 들려주는 창작의 기원과 세계관 설계의 방식은 단순한 개발 비화를 넘어, 게임 산업이 왜 여전히 스토리와 캐릭터에 주목하는지에 대한 해답처럼 들렸다.
Copyright ⓒ 마이데일리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