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그는 웃었다. 38년 경력의 베테랑 코미디언다운 미소였다.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 유방암에도 굴복하지 않았다. 암은 박미선을 벼랑 끝으로 몰았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말초신경이 마비되면서 손발 끝의 감각이 사라졌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오르고, 살이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수포가 생겼다. 살기 위해 받는 치료인데도 죽을 것 같은 고통이 이어졌다. 그는 16번의 방사선 치료도 견뎌냈다. 아픔의 시간을 뚫고 나온 그는 “생존 신고하러 왔다”며 특유의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민머리는 아름다웠다. 유방암 치료를 받는 여성들은 머리카락을 자를 때 많이 운다고 했다. 하지만 박미선은 울지 않았다. “언제 또 해보겠나” 싶어 즐거운 마음으로 깎았다. 머리카락은 다시 자라니 주저할 이유도 없었다. 딸 이유리의 권유로 프로필 사진도 찍었다. 그의 얼굴엔 근심도 걱정도 보이지 않았다. 한 손으로 머리를 살짝 만지는 자연스러운 포즈에서는 여유로움까지 느껴졌다.
그는 가족을 사랑했다. 딸 이유리는 엄마의 유방암 진단 소식에 심장이 내려앉을 듯한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딸 역시 엄마를 닮아 강인했다. 엄마가 화장실에 들어가면 혹시 토하고 있는 건 아닐까 걱정하면서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투병 일지’를 썼다. 일지를 쓰면서도 새벽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방문을 항상 열어두고 잤다. 남편 이봉원은 기타로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를 연주하며 아내를 위로했다. 가족은 박미선의 가장 큰 힘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퓨리오사’라고 했다. 조지 밀러 감독의 영화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서 퓨리오사는 독재자의 억압 아래 신음하던 여성들을 이끌고 탈출을 감행한 인물로, 여성들의 희망이었다. 박미선 역시 유방암 환자들에게 등불이 됐다. 초기에 치료하면 완치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인생의 진리도 깨달았다. 이제는 일에만 몰두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박미선은 웃음을 잃지 않는 진짜 ‘퓨리오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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