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일자리는 많은데, 정작 갈 곳은 없다."
청년 구직 시장에서 흔히 들리는 말이다. 중소·중견기업을 중심으로 채용 공고는 꾸준히 올라오지만, 임금과 근무 조건, 경력 설계가 불확실해 지원을 망설이는 청년이 적지 않다.
올해 2월 대학을 졸업한 20대 A씨도 그중 하나다. 하루에도 수십 건의 공고를 살펴보지만, 지원 버튼을 누르기까지는 늘 망설임이 따른다. '연봉 2800만원' '주 6일 근무' '1년 계약직' 같은 조건을 볼 때마다 마음이 식기 때문이다.
A씨는 "첫 직장이 커리어의 방향을 사실상 좌우할 텐데, 성장 경로가 보이지 않는 자리를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라며 "조건을 감수하고 입사했다가 1~2년 뒤 다시 구직 시장으로 돌아올 걸 생각하면 선뜻 결정을 내리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반면 경기도 화성에서 자동차 부품 회사를 운영하는 B대표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B 대표는 "작년부터 공고를 올려도 이력서가 거의 오질 않는다"라며 "어렵게 채용한 신입도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잇따라 퇴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구조적 불일치로 드러난 청년·중소기업 '평행선'
이처럼 청년은 일할 곳이 없다고 하고, 기업은 사람이 없다고 말한다. 겉으로는 모순된 주장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청년 고용 시장을 그대로 반영한 구조적 현상이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집계한 올해 1월 기준 청년층 확장실업률(고용보조지표3)은 16.4%에 달한다. 청년 다섯 명 중 한 명이 사실상 '일자리를 찾고 있으나 일하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의미다.
반면 같은 기간 중소기업 인력 미충원율은 8.3%로 집계됐다. 열 명 중 한 명은 자리를 비워둔 채 운영되고 있다는 뜻이다. 자리도 있고 사람도 있지만 서로 만나지 못하는 '구조적 불일치'가 고착화 되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지난 4월 발표한 '미취업 청년 대상 일자리 인식 조사'에서도 동일한 흐름이 드러난다. 청년들이 꼽은 양질의 일자리 핵심 조건은 △임금 수준(31.8%) △고용 안정성(17.9%) △일·생활 균형(17.4%)이었다. 하지만 국내 5인 이상 중소기업의 평균 임금은 대기업의 63% 수준에 불과해 복지·근로시간·승진 체계까지 전반적으로 격차가 누적돼 있다는 지적이다.

즉 청년들은 "중소기업 일자리는 커리어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느끼고, 기업은 "임금을 올리고 싶어도 여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양측의 기대가 평행선을 그리는 이유다.
◆산업별로 갈라진 청년 일자리 미래
한국노동연구원은 청년 고용 미스매치 논의를 단순화하는 시선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강동우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중소기업에서 제공할 수 있는 근로 조건이 대기업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열악한 건 이미 사회적으로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다만 이를 하나의 현상으로 일반화하기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업종에 따라 청년의 진입과 이직 흐름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산업 구조는 두 가지 상반된 흐름을 동시에 보여준다.
산업연구원이 지난 1월 발표한 'ICT 산업 노동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보통신·인공지능(AI)·디지털 서비스 산업의 인력 수요는 꾸준했다. 하지만 '경력-이직-재진입'이 반복되는 회전형 고용 구조가 이미 고착됐다고 진단했다. 경력은 쌓이지만 머무르지 않는 일자리인 셈이다.
반면 조선·철강·석유화학·장치형 등 전통 제조업과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업종에서는 자동화·설비투자 확대와 업황 둔화로 신규 채용 여력 감소 흐름이 뚜렷하다. 기술을 전수하고 싶어도 넘겨받을 인력이 없는 구조다. 같은 중소기업이라도 청년에게 보이는 경로와 미래는 산업별로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이와 관련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최근 발표한 노동시장 분석에서는 구인배수(구직자 1명당 일자리 수)가 0.48 수준으로 나타났다. 즉 "일자리는 충분한데 청년이 선택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프레임만으로는 현재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는 뜻이다. 산업별 수요 자체가 재편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 청년이 끼어 있는 것이다.
최근 발표된 고용 지표 역시 이같은 흐름을 뒷받침한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 12일 공개한 '10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2904만명으로 1년 전보다 19만3000명 증가했다. 겉으로는 전체 고용이 늘어난 것으로 보이지만, 연령대별로 들어가면 상황은 정반대다.
60세 이상(33만4000명)과 30대(8만명)의 취업자는 증가했지만, 나머지 연령대는 모두 감소했다. 특히 청년층(15~29세)은 16만3000명 줄며 전체 감소폭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 가운데 20대는 15만3000명 감소해 감소 규모가 가장 컸다. 전체 취업자는 늘었지만, 정작 청년에게 돌아가는 자리는 빠르게 줄어드는 구조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해결책은 '일자리 수' 아닌 '머물 이유'
전문가들은 정책 초점을 '일자리 수 늘리기'에서 '조건 개선과 성장 경로 보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중소기업이 △복지 개선 △직무 교육 체계 구축 △장기근속 인센티브 등을 도입할 경우 세제·금융 혜택을 연계하는 성과 연동형 지원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꼽힌다.
결국 청년 근로자가 조직에 머물 이유를 만들 수 있는 보상·경력 설계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정부도 이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중소기업 청년 근로자가 조직 내에서 머물 이유를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며 "직무 전환 교육과 장기 근속 지원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청년고용 문제의 본질은 이제 '자리 부족'이 아니라 '조건 불일치'로 이동하고 있다. 청년은 단순 생계형 일자리가 아닌 경력 축적과 이동 가능성이 보장되는 커리어형 일자리를 요구한다. 동시에 기업 역시 청년을 단기 노동력이 아니라 함께 성장할 인재로 바라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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