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윤진웅 기자] 글로벌 기업 수장들이 잇달아 한국을 찾아 반도체·AI·전장 등 미래 산업의 승부처에서 한국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첨단 기술 패권을 둘러싼 글로벌 동맹이 재편되는 가운데 한국 기업들이 대체 불가능한 공동 전략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한 달 간 △샘 올트만 오픈AI 최고경영자(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크리스토퍼 푸케 ASML CEO △칼레니우스 메르세데스-벤츠 회장 등 글로벌 주요 기업 수장 4명이 한국 기업들과 협력 논의를 위해 방한했다. 일주일에 1명 꼴로 한국을 찾은 셈이다.
올트만 CEO는 지난달 오픈AI가 추진 중인 초대형 AI 인프라 프로젝트인 '스타게이트'와 관련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HBM 협력 의향서(LOI)를 각각 체결했다. K-반도체가 세계 최대 규모 AI 인프라 구축 사업의 핵심 파트너로 참여하게 된 데다 글로벌 시장에서 조기 수요처를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젠슨 황 CEO는 지난달 말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참석차 한국을 찾았다가 이재용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치맥 회동'을 벌이는 진풍경을 만들었다. 이날을 계기로 엔비디아와 국내 기업들 간 대대적인 비즈니스 파트너십이 이뤄졌고, GPU 26만장 공급이라는 결과를 만들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당시 APEC CEO 서밋 의장을 맡고 있어 치맥 회동에는 참석하지 못했지만, 젠슨 황과 경주에서 따로 만났다.
푸케 CEO는 지난 12일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을 각각 만나 최신 장비 개발 및 공급 전략, AI 반도체 시장 전망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반도체 동맹 방안을 논의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앞세워 글로벌 메모리 시장을 이끌고 있어, ASML에게는 핵심 고객사로 꼽힌다. 양사 모두 ASML의 최첨단 '하이 NA 극자외선(EUV)' 장비를 확보해 첨단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다.
칼레니우스 회장은 13일 2년 만에 한국을 다시 찾아 LG, 삼성, HS효성 고위 관계자들과 차례로 만나며 광폭 행보를 이어갔다. LG전자 조주완, LG에너지솔루션 김동명, LG디스플레이 정철동, LG이노텍 문혁수 등 LG그룹 내 전장 사업을 펼치는 주요 계열사 CEO들과 만남에 이어 조현상 HS효성 부회장과도 만나 협력을 논의했다.

칼레니우스 회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만찬 자리도 가졌다. 이 회장이 칼레니우스 회장을 승지원에 초대했다. 승지원은 이건희 선대회장이 집무실 겸 영빈관으로 활용한 곳이다. 이 회장은 국내외 ‘귀빈’을 만날 때 승지원을 이용하고 있다. 이날 회동에는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삼성SDI의 최주선 사장과 크리스천 소봇카 하만 CEO도 동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은 벤츠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디지털 키 등에서 협력 중이다. 이번 만찬 자리에서 차량용 배터리나 반도체로 협력 관계를 넓히기 위한 논의가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배터리 분야는 벤츠로서도 한국과의 파트너십 확대가 필요한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움직임이 일회성 방문이 아니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신호탄이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반도체와 AI 인프라, 전장 플랫폼에서 한국 기업이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면서 주요 글로벌 기업의 전략 구도가 한국을 축으로 다시 짜이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초대형 AI 인프라부터 차세대 전장 기술까지 한국 기업이 빠지면 설계 자체가 성립하기 어려운 구조가 됐다”며 “다만 중국과의 기술 경쟁이 거세지는 만큼 글로벌 파트너들과의 공동 개발 구도를 더 견고하게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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