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중소 제조공장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다. 설비는 돌아가고, 작업자는 움직이며, 재고는 빠르게 변한다. 그러나 이 복잡한 움직임을 설명할 언어는 늘 부족하다. 왜 어떤 날은 라인이 부드럽게 흐르고, 어떤 날은 같은 설비가 반복적으로 멈추는지. 현장의 대부분은 여전히 경험과 감각에 의존해 운영되고 있다.
원동명 리얼라이저블 대표는 이 문제를 현장을 오래 본 사람으로서 말한다.
"제조업은 정확한 숫자의 세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암묵지에 의존하는 산업입니다. 공장은 설비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입니다."
리얼라이저블의 출발은 공장 유지관리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공장장닷컴'이었다. 에너지 사용량, 임대 관리, 안전 점검, 설비 문서 등 공장에서 반드시 해야 하지만, 정리된 체계가 존재하지 않는 일들을 통합해 디지털화 했다.

중소 제조 생태계에서는 이 역할을 대부분 한 명의 공장장, 혹은 사장 본인이 떠안는다.
"작은 공장에서는 누가 쉬면 시스템이 아니라 운영 자체가 흔들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장을 위한 디지털 관리사무소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관리 SaaS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영역이 있었다. 불량률이 특정 구간에서 치솟고, 동일한 공정에서 작업자가 바뀌면 생산성이 달라지는 현상. 설비가 일정 온도를 넘어가면 예기치 않은 정지가 발생하는 상황. 이는 데이터를 모은다고 해결되지 않았다.
"데이터는 쌓이고 있었지만, 그 데이터를 이해하고 해석해주는 구조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관리가 아니라 의사결정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AI 공장장'이 탄생했다.
"AI는 사람을 대체하지 않습니다. 역할을 나누는 협업자입니다."
AI 공장장은 올해 하반기 리얼라이저블의 핵심 제품으로 전환됐다. 단순 모니터링 시스템이 아니라 운영 의사결정 자체를 수행하는 구조다.
실제 적용 기능은 △공정 조건 변화에 따른 품질 편차 예측 △원재료 단가 변동에 따른 원가 시뮬레이션 △설비 상태·생산계획 기반 작업 지시 자동 생성 △생산 흐름에 맞춘 설비 투입 경로 추천이다.
현재 두 곳의 제조사와 현장 실증(PoC)이 진행 중이다. 관련 알고리즘은 특허 출원 단계다.
원 대표는 변화의 본질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까지 공장장은 '공정-품질-설비-조달'을 모두 책임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제조업은 너무 복잡해졌고, 더 이상 한 사람이 모든 판단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AI는 사람을 밀어내는 존재가 아니라 역할을 분리해주는 존재입니다."
그는 이 구조를 'Multi-AI 제조운영'이라고 칭한다.
"곧 AI 한 명이 아니라 여러 AI를 함께 고용하는 시대가 옵니다. 공정-AI, 품질-AI, 설비-AI, 조달-AI가 병렬로 작동하고, 사람은 그 위에서 판단의 방향성을 잡는 구조입니다."
리얼라이저블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공장 운영 데이터가 쌓이면, 기업의 가치 평가 방식 또한 달라져야 한다. 이 문제의식은 '큰공장' 플랫폼의 재편으로 이어졌다.
처음 큰공장은 공장 거래 중심 프롭테크 서비스였다. 그러나 제조업 인수합병(M&A) 시장을 관찰하면서 회사는 더 큰 결론에 도달했다.
"제조업 거래는 건물이나 설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가동권, 숙련자, 공정 레시피, 품질 관리 노하우까지 함께 움직입니다. 즉, 공장은 땅이 아니라 운영되는 조직입니다."
이처럼 큰공장은 제조업 특화 M&A 플랫폼으로 재편되고 있다. 이는 곧 △운영의 디지털화 △가치의 계량화 △거래의 표준화 산업 구조를 의미한다.
원 대표는 이 구조를 '운영 데이터 시장'이라고 부른다. 이는 제조업의 보이지 않는 인프라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이런 변화는 단지 한 기업의 기술 실험이 아니라, 중소 제조 생태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전환과 맞닿아 있다.
리얼라이저블은 최근 인천테크노파크가 주관하고 탭엔젤파트너스가 운영하는 '2025 인천 라이징 스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역 기반 제조 현장과 연계한 실증·확산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다.
"기술은 현장 안에서 살아 있어야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현장 안에서 작동하는 AI'를 만드는 팀입니다. 그래서 현장과 함께 성장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결국 리얼라이저블이 바꾸려는 것은 효율이 아니라 구조다.
"제조업의 디지털 전환은 기계에 센서를 붙이는 문제가 아닙니다. 운영의 언어를 새로 만드는 일입니다. 우리는 그 변화를 가장 기초부터 차근차근 쌓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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