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심지원 기자] ‘마스가(MASGA, 미국 조선업 재건 프로젝트)’와 연계된 핵추진잠수함(핵잠) 건조 장소가 한미 관세·안보합의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의 핵심 논제로 떠올랐다. 한국 정부는 국내 건조의 당위성을 고수하고 있는 반면 미국은 필리조선소 건조를 압박하며 팽팽한 신경전을 이어가고 있다. 한미 양국의 입장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천문학적인 투자 부담과 기술 유출 리스크를 떠안을 국내 조선사들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핵추진잠수함 도입을 두고 이견을 이어가는 가운데 관련 내용이 담길 것으로 알려진 공동 팩트시트 발표가 계속 미뤄지고 있다. 당초 정부는 한미 정상회담 2~3일 뒤 팩트시트를 공개할 예정이었으나 미국 측의 문안 수정 요구로 발표 일정이 지연되는 상황이다.
협상 난항의 핵심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직접 핵잠 건조지로 지목한 필리조선소다. 지난달 30일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국이 현재 보유한 구식이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디젤 잠수함 대신 핵추진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며 “미국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은 마스가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미국 본토에서 건조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핵잠 건조를 안보와 기술 주권의 문제로 규정하고 국내 건조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핵잠은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협에 대응하는 ‘수중 킬체인’의 핵심 전력으로, 자주국방의 상징이자 기술 자립의 완성 단계로 평가된다. 정부가 국내 건조를 고수하는 이유도 바로 군사 기밀 보호와 작전 운용 자율성에 있다. 핵연료 공급 승인만 이뤄진다면 한국이 이미 확보한 잠수함 건조 기술력을 바탕으로 핵잠 건조는 어렵지 않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단 핵연료 확보라는 법적 장벽은 있다. 한국은 한미 원자력협정에 따라 핵잠 운용에 필요한 고농축우라늄(HEU)을 자체 생산하거나 해외에서 확보할 수 없다. 핵잠은 장기간 연료 교체 없이 운용돼야 하므로 고농축 연료가 필수지만 미국의 공급 승인 없이는 원자로를 가동할 수 없는 구조다.

또 필리조선소의 기술적·물리적 역량 부족도 우리 정부가 국내 건조를 주장하는 근거다. 필리조선소는 약 40만㎡(12만평) 부지를 갖추고 있으나 현재 연간 상선 1~2척 생산에 그치며, 핵잠 건조에 필수적인 특수강 용접·원자력급 품질 관리 시스템도 미흡하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 5일 국회에서 “필리조선소는 기술과 인력 등에서 준비가 충분치 않다”며 국내 건조의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 인수 후 한국식 생산성 혁신을 도입해 선박 진수 일정을 5개월 앞당기고, 골리앗 크레인 인근 유휴부지에 약 600만달러(84억원)를 투자했지만,핵잠 수준의 정밀도를 단기간에 구현하기에는 시간적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미국이 필리조선소를 고집하는 이유는 마스가를 통한 일자리 창출이라는 경제적 이익과,민감한 원자로 기술을 자국 내에서 통제하려는 안보적 목적이 맞물린 정치적 카드로 풀이된다.
한미 협상 결과에 따라 막대한 투자 규모가 좌우될 수 있는 만큼 국내 조선사들은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며 한미 간 협상 결과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필리조선소의 소유주로서 “건조 같은 경우에는 장기간 논의가 될 상황”이라며 “건조가 필요할 시 그룹 차원의 투자를 통해 시설 확장에 집중할 것”이라며 협상 결과 이후 구체적 방안을 세우겠다는 ‘유보적 전략’을 취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핵잠 건조에 언제든 참여할 준비가 돼 있다”며 건조 생산능력(CAPA) 확장에 주력하고 있다. 건조 시 즉각 투입이 가능하도록 설비와 기술력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삼성중공업은 핵잠 대신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정비(MRO) 시장과 핵심 기자재 공급 사업을 중심으로 별도 전략을 구축하며 리스크를 분리하고 있다.
국내 조선 3사의 운명은 한미 양국 정부의 최종 협상 테이블 위에 달려 있다. 업계는 정부가 핵연료 공급이라는 법적 장벽을 해소해 ‘한국 건조’라는 국익 실현으로 이어지길 기대하며 마스가의 핵잠 변수가 한국 조선산업의 새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긴장된 시선으로 향후 전개에 관심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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