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배우 정성일이 영화 ‘살인자 리포트’(감독 조영준)로 관객 앞에 섰다. 정신과 의사이자 연쇄살인범인 캐릭터로 분해 서늘한 변신을 보여준 그는 “재밌는 시나리오에 이런 캐릭터라면 놓치고 싶지 않았다”고 작품을 택한 이유를 전하며 “조금 더 자유로운 모습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연극과 뮤지컬 등 무대에 오르며 탄탄한 연기력을 다져 온 정성일은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로 존재감을 높인 뒤 넷플릭스 영화 ‘전, 란’에서 일본인 무사 겐신 역을 맡아 전작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주며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입증했다.
첫 스크린 주연작인 ‘살인자 리포트’에서도 그의 단단한 연기 내공을 확인할 수 있다. ‘살인자 리포트’는 특종에 목마른 베테랑 기자 선주(조여정 분)에게 정신과 의사 영훈(정성일 분)이 연쇄살인을 고백하는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조영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으로 지난 5일부터 관객을 만나고 있다.
극 중 정성일은 정신과 의사이자 11명을 죽인 연쇄살인범 영훈을 연기했다. 영훈은 자신의 연쇄살인을 고백하며 선주에게 일대일 인터뷰를 신청하고 자신의 살인에 대해 낱낱이 고백하는 과정에서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정성일은 묵직한 카리스마와 절제된 감정 연기, 화려한 언변까지 정신과 의사이면서 동시에 연쇄살인범인 영훈의 양면성을 날카롭게 표현하며 극의 긴장감을 한층 끌어올린다. 최근 정성일을 만나 ‘살인자 리포트’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완성된 영화는 어떻게 봤나.
“객관적일 수 없는 것 같다. 아쉬움도 있고 좋은 것도 있었다. 1년 전에 보고 언론시사회 때는 사실 영화를 안 봤다. 기가 빨리는 영화다 보니까 못 보겠더라. 나중에 시간을 두고 극장에서 표를 사서 조용히 보려고 한다. 관객 반응도 보고 싶다.”
-작품을 택한 이유는.
“시나리오가 너무 좋았다. 재밌었고 놓치고 싶지 않았다. ‘더 글로리’ 하도영 이후 들어오는 시나리오, 대본들이 결이 비슷하다. 아직도 그렇거든. 그걸 굳이 하기 싫다는 게 아니라 비슷한 걸 해서 하도영을 넘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죽을 때까지 하도영만 해야 하나, 내 이름은 하도영인가, 정장이 아니면 옷을 못 입는 건가 싶었다. 그런데 영훈은 같은 정장을 입어도 틀 수 있는 방향이 많았다. 재밌는 시나리오에 이런 캐릭터라면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다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조금 더 편하게 놀 수 있었다. 자유로운 정성일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정신과 의사이자 연쇄살인범 역할이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캐릭터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텐데 어떻게 접근했나.
“이해를 할 수 없는 부분까지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배우가 해야 하는 숙제니까. 다만 영훈을 미화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가장 컸다. ‘다크 히어로’라는 단어 자체가 나오면 안 되고 그렇게 비쳐서는 절대 안 된다고 조심했다. 보는 사람마다 감정이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보는 분들도 분명히 있을 거다. 시작점은 ‘영훈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였다. 실행하느냐 안 하느냐의 문제일 뿐 생각해 볼 수는 있는 지점이라고 봤다. 사적 제재가 합리화될 순 없다. 그래서 영화를 끝내고 빨리 나오고 싶기도 했다.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은 충분히 던져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임했다.”

-반전이 드러난 후 영훈을 바라보는 관객의 시선이 달라질 수밖에 없지만 인물 자체도 다르게 느껴졌다. 의도해서 연기에 차이를 두기도 했나.
“‘본캐’는 정신과 의사다. 환자에게 치료를 원하느냐고 묻는 게 영훈의 역할인데, 영화 초반에는 영훈이 사이코드라마라는 판에 몰아넣는 ‘연기’를 했던 거다. 사이코패스처럼 보여도 될 만큼 선주를 계속 몰아넣는 역할을 한 거다. 후반부는 진짜 영훈이라는 인물로서 있었다. 이 사람의 아픔에 손을 내미는 입장이었다. 초반에는 몰아붙였다면 후반부는 그냥 영훈으로서 연기했는데 나도 완성된 영화를 보니 전반과 후반이 확실히 나뉜다고 느껴졌다.”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참고한 것이 있다면.
“정신과 치료에 대해 집중했다. 사람을 가장 잔혹하고 고통스럽게 죽일 수 있는 신체적 고통이 무엇일까, 누군가를 치료하는 게 아니라 고통을 줄 수 있는 것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책을 많이 읽었다. 다크 심리학 같은 것도 공부했다. 다만 정신과 의사라고 해서 거기에 대한 전문성을 많이 갖고 가는 장면이 나오진 않는다. 결국 하나였다. 내 앞에 있는 기자 백선주라는 인물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많이 고민했고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 나갔다.”
-비주얼에서도 이 인물의 성격이 느껴지더라. 어떤 고민을 했나.
“감독님이 엄청 신경 쓰셨다. 안경부터 포마드 스타일, 머리에 윤기가 돌아야 한다는 점까지, 감독님이 ‘열한 명을 죽였지만 자기 관리가 뛰어나다’는 대사에 맞게 표현하기 위해 많이 고민하셨다. 안경 모양까지 감독님이 선택했다. 그림적인 부분은 감독님에게 맡겼다. 개인적으로는 하도영(‘더 글로리’) 이미지에서 변형을 주고 싶었다. 똑같이 차가워 보여도 한 끗 차이를 두고 싶어 노력했다.”

-한정된 공간에서 오는 지루함은 어떻게 극복하고자 했나.
“조명이나 세트 같은 변화는 감독님이 많이 고민했다.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연기뿐이었다. 보는 사람들이 ‘다음에는 무슨 수를 둘까, 어떤 질문을 던질까, 이 사람은 어떻게 받을까’를 계속 궁금해할 수 있어야 했다. 때로는 여유 있다가도 확 들어오는, 변주와 변칙적인 리듬을 현장에서 만들었다. 그게 지루함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무대 공연 경험이 도움이 됐나.
“익숙했다. 공간 자체가 한정돼 있다는 게 영화지만 공연 같은 매력을 가져올 수 있었고 공연 같지만 영화니 또 다른 걸 시도할 수 있었다. 익숙하면서도 재밌었고 자유로웠다. 좋은 경험이었다.”
-조여정과의 호흡은 어땠나.
“나는 상대 배우에 따라 변화를 많이 하는 편인데 이번 영훈도 조여정이 연기한 백선주 때문에 나온 거다. 다른 배우였다면 또 다른 영훈이 나왔을 거다. 조여정이 워낙 베테랑이고 잘하는 배우라 너무 좋았다. 현장에서 주고받기만 하면 됐다. 결이 잘 맞았다.”
-앞서 기가 빨린다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를 관객에게 소개한다면.
“그만큼 몰입도 있게 볼 수 있을 거다. 이제까지 한국 영화에서는 없던 형식이었고 내가 좋아하는 무대 감각이 섞여 있다. 상호작용하는 묘미가 있다. 영화지만 공연처럼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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