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K리거, AI로 아마추어 혁신" 권정혁 스포잇 대표

프라임경제
[프라임경제] 16년간 축구장을 누비던 골키퍼가 이제는 키보드와 AI로 승부를 본다. K리그 무대를 거친 권정혁 스포잇 대표는 기록되지 못한 순간의 아쉬움을 창업의 동력으로 삼았다. 지금은 아마추어 경기 한 판도 20분 만에 '프로급 하이라이트'로 다시 태어난다.


그 결과, 아마추어 경기조차 프로처럼 영상이 잘리고 데이터가 쌓이며 기록되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

권 대표는 과거 K리그와 유럽 무대에서 골키퍼로 활약했다. 그는 국내 골키퍼 가운데 최장거리 득점자이자 국내 1호 유럽 진출 골키퍼라는 타이틀을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화려한 이력 뒤에는 뼈아픈 한계도 있었다. 이적과 진출 과정에서 구단들은 철저히 기록과 데이터를 요구했지만, 당시 한국 축구 환경은 이를 체계적으로 제공하지 못했다. 좋은 하이라이트가 없다는 이유로 기회가 줄어든 경험은 선수로서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특히 권 대표의 선수 시절에는 K리그 중계 방송사조차 많지 않았다. 경기를 전반전까지만 보여주는 경우도 흔해, 선수들의 플레이가 온전히 기록되지 못했다. 영상 데이터가 거의 남지 않는 시대였던 만큼, 그가 느낀 아쉬움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었다.

이 공백은 결국 더 큰 무대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았다. 권 대표는 은퇴 후 직접 2500경기 자체 저작권 영상을 모아 데이터셋을 구축했고, 이를 기반으로 비전 AI 학습을 시작했다. "한 번 뛴 경기가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절박함이 곧 스포잇의 철학으로 자리 잡았다.

그가 세운 스포잇은 '비전 AI'를 앞세워 경기 영상을 자동으로 편집·분석하는 플랫폼이다. 아마추어 경기 한 판이 끝나면 20분 뒤 주요 장면 30여 개가 자동으로 추출된다. 득점·세이브·슈팅은 물론 특정 포지션의 움직임까지 걸러내며, 정확도는 99%에 달한다. 

권 대표는 "앞으로는 거리·속도·볼 터치·패스 성공률까지 영상만으로 산출할 것"이라며 "GPS나 웨어러블 기기를 대체하는 수준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포잇은 아마추어 시장을 우선 공략한다. 기존 풋살 대관 시장에 AI 영상을 접목해 차별화를 꾀했고, 지난 9월 청라 풋볼센터에서 상업 서비스를 시작했다. 권 대표는 "풋살장은 대관 수익에만 의존한다. 우리는 경기 영상을 자동 제공해 차별성을 만들고, 데이터 기반 서비스로 수익을 다각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결제·매칭·랭킹·리쿠르팅까지 확장해 '뛰고 남기는 경험'을 플랫폼화할 계획이다.

스포잇은 이미 프로 구단 2곳, 리그 2곳과 협력했고 국내 에이전시 8곳에 이적용 프로필 영상을 제공한다. 프로축구연맹 사회공헌 사업을 6년째 운영하며, 연수구청과 함께 아동 대상 체육 지원도 이어왔다. 이러한 경험은 B2B로 이어져 구단·학교·대학 팀을 대상으로 분석 패키지를 제공하며, 단순 기술을 넘어 '성장 데이터'를 제공하는 점이 차별화된다.

글로벌 진출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프로 구단 유소년팀과 유상 계약을 체결하며 첫 해외 수출에 성공했다. 일본 시장을 교두보 삼아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동남아로 진출을 준비한다. 내부적으로는 다국적 개발팀이 영어로 협업하며, 구글·오라클·네이버클라우드 크레딧 지원과 TIPS·AI 과제 선정으로 자원을 확보했다.

지난해 △구글 클라우드 스타트업 프로그램 △오라클 'MIRACLE' △데이터바우처 지원사업 △네이버클라우드 그린하우스(1억원) 등 글로벌·정부 프로그램에도 잇따라 선정됐다.

또 탭엔젤파트너스가 운영하고 인천테크노파크 인천콘텐츠기업지원센터가 주관하는 '2025 인천 콘텐츠기업 액셀러레이팅 지원 프로그램'에도 이름을 올리며, 지역 창업 생태계와 연계한 성장 기반도 확보했다.


스포츠 영상은 저작권과 초상권이 얽혀 있다. 스포잇은 촬영 의뢰 영상은 회사가 관리하고, 플랫폼 내 업로드 영상은 사용자 동의 체계를 마련해 리스크를 줄였다. 권 대표는 "저작권·초상권 동의가 전제되는 구조라 안정적"이라며 향후 데이터 보안·보험 연계 서비스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상업적 성과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도 놓치지 않는다. 은퇴 선수를 고용해 청소년 훈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아동·청소년에게 무료 기록 영상을 제공한다. 권 대표는 "기록이 아이들의 자신감을 키우고, 또 다른 기회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이는 스포츠를 통한 사회적 이동성을 높이는 ESG 실천 사례로 평가된다.

인터뷰 중 권 대표는 히딩크호 시절을 회상하며 잠시 눈시울을 붉혔다. 국가대표로 선발되진 않았지만 "벤치에서도 배운 게 많았다. 축구는 기록되지 않으면 사라지는 순간들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축구에 대한 애정이 넘치는 사람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대학 시절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그는 실습실에서 비디오를 수동 편집하던 경험도 떠올렸다. "히딩크 감독의 동료였던 압신 고트비 코치가 최신 편집 프로그램으로 영상을 분석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때의 영감이 지금 창업의 모티브가 됐다"고 회상했다.


권 대표의 철학은 단순하다. "천천히 가더라도 옳은 방향으로" 선수 시절부터 지켜온 태도이자 지금의 스포잇을 이끄는 원칙이다. 속도보다는 방향, 단기 성과보다는 생태계 구축이 우선이라는 신념이다. 

끝으로 그는 "99%의 축구는 아마추어가 한다. 그들의 순간을 제대로 기록하고 싶다. 작은 기록들이 모여 플랫폼이 되고, 그 플랫폼이 한국 스포츠를 더 성숙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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