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한 남극, 쿨한 한국④] 남극의 붕괴: 무너진 바다

시사위크
1월, 남극 킹조지섬, 남극세종과학기지 바로 앞에 위치한 마리안 소만 빙하가 무너지는 모습./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촬영 협조=황대하 대원
1월, 남극 킹조지섬, 남극세종과학기지 바로 앞에 위치한 마리안 소만 빙하가 무너지는 모습./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촬영 협조=황대하 대원

 

해불양수(海不讓水): 바다는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면서도 넘치지 않는다.

-‘관자(管子)’, 형세해(形勢解) 편 중-

시사위크|남극=박설민·김두완 기자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사상가 관중(管中)의 업적을 기록한 ‘관자(管子)’ 형세해(形勢解) 편에 나오는 문구다. 모든 것을 차별하지 않고 포용할 수 있는 포용력을 바다의 넓음에 빗대 표현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미사어구가 아니다. 실제로 바다는 우리 자연의 모든 것을 포용한다.

수십억년, 영겁의 세월 동안 바다는 뜨거운 온실가스, 환경오염물질을 흡수하고 정화했다. 이 바다의 힘 덕분에 지구는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생명이 넘치는 행성이 됐다. 그러나 최근 바다의 포용력에도 한계가 왔다. 매일 전 지구에서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는 바다의 용량을 가득 채웠다. 이는 ‘기후변화’라는 모습으로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바다의 균열은 세상의 끝 ‘남극’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 무너진 마리안 소만, 남극 바다는 균형을 잃었다

‘우루루 쾅쾅’

1월, 남극 킹조지섬. 남극세종과학기지 바로 앞에서 천둥 소리가 울렸다. 바톤반도에서 가장 거대한 빙벽인 마리안 소만(Marian cove)’의 빙하가 무너지는 소리였다. 빙하파편은 산사태처럼 바다로 쏟아졌다. 그 소리는 남극의 고요한 공기를 찢어놓았다. 이를 바라보는 극지연구소(KOPRI) 소속 과학자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기후변화로 인한 남극 기온 상승으로 빙하가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기 때문이다. 남극 빙하 붕괴는 남극 연안 염분 농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무너져내린 마리안 소만 빙하의 모습. 암벽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빙하가 붕괴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변 바다엔 무너져 쏟아져내린 막대한 양의 빙하가 수면을 뒤덮었다./ 사진=남극특별취재팀
무너져내린 마리안 소만 빙하의 모습. 암벽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빙하가 붕괴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주변 바다엔 무너져 쏟아져내린 막대한 양의 빙하가 수면을 뒤덮었다./ 사진=남극특별취재팀

빙하는 소금기가 없는 얼음이다. 이때 막대한 양의 빙하가 바다로 쏟아져 들어가면 일시적으로 주변의 바닷물에서 ‘담수화(淡水化,Desalination)’가 발생한다. 쉽게 말해 바다가 싱거워진다는 의미다. 실제로 남극세종과학기지 연구원들이 마리안 소만 연안 해수 조사를 한 결과, 지난해보다 올해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줄어든 것을 확인했다.

측정 데이터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 바톤반도 연안 일대의 염분 농도는 31.1PSU였다. 지난해 34.1PSU와 비교해 평균 8.8% 가량 감소했다. 전 세계 바다 평균 염분농도인 35PSU와 비교해선 11.14% 낮다. 참고로, 염분농도 단위인 ‘PSU’는 바닷물 1kg에 녹아있는 소금의 양이다.

물론 1년 새 염분 농도 변화 데이터만을 가지고 남극 전체가 ‘싱거워졌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전문가들 역시 해수 염분 변화는 빙하의 융해뿐만 아니라 해류 변화, 기상 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연안 지역 내 담수 유입량이 증가하고 있음을 단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자료로는 볼 수 있다.

남극세종과학기지 연안의 염분 농도 변화 분포. / 그래픽=이주희 디자이너, 자료=극지연구소
남극세종과학기지 연안의 염분 농도 변화 분포. / 그래픽=이주희 디자이너, 자료=극지연구소

◇ 남극 빙하 융해, 전 세계 바다를 싱겁게 만들다

이 같은 남극 빙하 융해는 전 세계 해양 담수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 홋카이도대 연구팀은 1926년부터 2016년까지 남극 해양 지역의 염분 데이터를 분석했다. 그 결과, 빙하에서 유래한 담수 유입은 21세기 초 연간 134~402Gt(기가톤)에 도달했다.

빙하에서 발생한 담수는 남극을 넘어 전 세계 바다에 영향을 미친다. 연구팀의 조사 기간 동안 담수화 현상이 발생한 곳은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이다. 이 중 태평양 담수화의 92%가 남극 빙하 융해에 따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대서양과 인도양 담수화에 각각 63%, 28%의 영향을 미쳤다.

남극 빙하 융해는 주변 연안의 생물종, 특히 물속 바닥에 사는 ‘저서생물’들에게 큰 위협이다. 새우와 같은 저서생물들은 삼투압으로 체내 염분을 조절한다. 이때 갑자기 물의 염분이 낮아지게 되면 담수를 감당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이 흡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몸이 터져서 죽는다.

담수화 피해는 남극 해양생태계 먹이사슬을 담당하는 ‘크릴새우’와 ‘옆새우’가 직격탄을 맞았다. 남극세종과학기지 저서팀 연구원들은 “물의 염분 농도에 이상이 생기자 옆새우들이 먹이를 잘 찾지 못하거나 사망하고 심지어 서로 잡아먹는 등의 생태계 교란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최한구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마리안 소만 지역 바다에 살고 있는 해양 생물들은 일정한 염분에서 살도록 적응된 종”이라며 “그런데 빙하의 유입으로 담수화돼 염분이 낮아지게 되면 생물들의 생장, 번식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빙하 후퇴지역의 해조류 군락 발달 모식도 / 그래픽=이주희 디자이너, 자료=극지연구소
빙하 후퇴지역의 해조류 군락 발달 모식도 / 그래픽=이주희 디자이너, 자료=극지연구소

◇ 미세먼지가 덮은 수면, 빛은 갈 길을 잃었다

남극 바다에서 균형을 잃고 있는 것은 염분만이 아니다. 남극의 빙하는 수만 년에 걸쳐 얼려진 것이다. 때문에 그 속에는 엄청난 양의 먼지, 부유물 등이 포함돼 있다. 빙하가 녹아 이 부유물들이 대량으로 바다에 들어가면 주변 연안 바닷물을 혼탁하게 만들게 된다. 또한 산소 농도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극지연구소 연구팀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남극 세종과학기지 인근 마리안 소만에서 바다 속 해조류 군락 생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마리안 소만 빙하에서 2.2km 떨어진 지역에서 6종, 1.2km 떨어진 지역부터 빙벽까지는 4종의 해조류를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12~16종의 해조류가 발견되는 바톤반도 지역 주변 바다보다 현저히 적은 숫자다.

해조류 군락 쇠퇴에 대해 연구팀은 해조류의 광합성 저하가 주요 원인인 것으로 추정했다. 남극 빙하가 녹으면서 그 속에 있던 먼지 등 부유물이 바닷물을 탁하게 했고, 이것이 햇빛을 차단시켜 해조류의 광합성을 방해했다는 것이다.

마리안 소만 빙하에서 2.2km 떨어진 지역에서 6종, 1.2km 떨어진 지역부터 빙벽까지는 4종의 해조류를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12~16종의 해조류가 발견되는 바톤반도 지역 주변 바다보다 현저히 적은 숫자다./ 극지연구소
마리안 소만 빙하에서 2.2km 떨어진 지역에서 6종, 1.2km 떨어진 지역부터 빙벽까지는 4종의 해조류를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12~16종의 해조류가 발견되는 바톤반도 지역 주변 바다보다 현저히 적은 숫자다./ 극지연구소

최한구 책임연구원은 “남극의 빙하는 여러 종류의 먼지와 부유물들을 품고 있는데 이것이 녹게 되면 바닷물이 혼탁해진다”며 “이로 인해 해양에 들어오는 햇빛이 약해지게 되고 해양 식물들은 광합성을 방해받아 생장에 부정적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빙하 융해로 인한 퇴적, 빛 유입 감소, 낮은 온도, 염분 감소 등 여러 스트레스 요인이 인근 해조류 군락에 복합적 교란을 발생시킨다”며 “이 같은 교란은 마리안 소만 내 대형 해조류 군집 발달을 저해했고 이는 앞으로 빙하가 녹을 때 지속될 수 있어 해조류 군락이 회복하는데 6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남극 바다는 더 이상 '무한한 포용'의 상징이 아니다. 빙하가 무너져 바닷물이 싱거워지고 해양생태계가 흔들리는 현상은 지구 전체 바다의 균형이 깨지고 있음을 알리는 경종이다. 남극에서 시작된 이 작은 균열은 곧 전 세계 바다로, 그리고 우리의 삶까지 번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과제는 바다가 감당하지 못한 짐을 인간 스스로 덜어내는 일이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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