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이정원 기자] 2020 도쿄올림픽 4강 주역이자 살림꾼으로 이름을 날렸던 표승주는 2024-2025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었다. 만 33세에, 비교적 이른 은퇴. 표승주는 누구보다 빠르게 제2의 인생을 설계하 고 있다. 대한체육회 선수위원으로 당선됐고, 2025-2026시즌부터는 KBSN스포츠 해설위원으로 활동한다. 선수 시절 때보다 더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표승주를 만나고 왔다. 미소가 아름다운 표승주와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차준환, 김우진 선수와 함께라니 저 있어도 되나요?”
표승주의 새로운 도전
Q.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은퇴 후 두 달 정도는 하고 싶은 거 다했어요. 여행도 많이 다녔고, 지금까지 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했어요. 그동안 팀 스케줄에 맞췄다면, 이제는 제가 직접 스케줄을 짜죠.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특별한 게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전 모든 게 특별하다고 느껴요.
Q. 그럼 평일 기준 하루 스케줄이 어떻게 되나요.
일단 집에 있어요(웃음). 잠깐잠깐 제 볼 일 보고요. 최근에는 언니 집에 일주일 있었고요. 부모님 집도 다녀왔고요. 은퇴했으니까 맛있는 걸 많이 먹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평일에는 남편과 식단 관리를 해요. 주말에 맛있는 걸 먹으려고요.
Q. 남편과 여행도 다녀왔나요.
양가 부모님과 일본 오사카를 다녀왔어요. 아, 따로요. 저희 부모님과 갔을 때 일화가 있어요. 그때가 FA 협상 때였어요. 운동을 하는 동안 부모님 모시고 한 번도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에 다녀왔는데, 은퇴와 제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했어요. ‘만약 은퇴를 결정한다면, 어떨 것 같냐’라는 저의 말에 부모님께서 ‘그냥 네 마음이 가는 대로 하는 게 제일이야’라고 조언해 주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부모님과 헤어진 후에 정말 많이 울었어요. 그때 배구계에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잖아요. 선수 생활하면서도 느꼈지만 ‘카더라’가 너무 무섭더라고요. 제가 말하지 않은 것들이 소문으로 떠돌았고요. 부모님이 옆에 계시니 마음에 위안이 됐죠.
Q. 선수 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접어두고, 이 이야기를 꺼내볼까 해요. 기분 좋은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대한체육회 선수위원에 당선됐어요.(표승주는 하계 종목 김국영(육상), 김우진 (양궁), 김지연(철인 3종), 류한수(레슬링), 이다빈(태권도), 이주호(수영), 임애지(복싱), 조성민(요트), 최인정(펜싱) 동계 종목 차준환(빙상), 오정임(루지), 이돈구(아이스하키) 등과 제 42대 대한체육회 선수위원회 신임 위원으로 뽑혔다. 임기는 4년이다.)
대한체육회 선수위원을 이번에 처음 알게 됐어요. 제게는 너무 과분한 자리죠. 배구협회에서 먼 저 추천을 했어요. 그전에 남자배구 신영석(한국전력) 선수가 했다고 하더라고요.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제 모토는 ‘뭐든 경험해 보자’ 입니다.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고, 어찌 됐든 배구와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어 감사하죠.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건 아니잖아요. 39종목 713명이 투표를 했는데, 뽑아줘서 감사하죠. 영광스러운 자리를 맡게 됐어요.
Q. 어떻게 선수위원에 지원하게 됐나요.
배구협회 사무처장님이 ‘승주 선수가 했으면 좋겠다’라고 추천하셨어요. 그래서 지원서를 넣었고, 오한남 회장님도 만났는데 저를 응원해 주셨어요.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으니, ‘나름 열심히 잘 살았구나’ 하는 행복한 마음을 가지며 지내고 있어요(웃음).
Q.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만나는 사람마다 ‘위원님 축하드립니다’라고 하는데, ‘부담스러워. 장난치지 마’라고 말하며 넘어가요(웃음). 그냥 신기해요. 저의 하루하루가. 그동안 접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다 보니 너무 재밌어요.

Q. 선수위원은 어떤 일을 하나요.
일단 선수위원 단톡방이 만들어졌어요. 공지가 한 번씩 올라오는데요. 가장 중요한 건 선수들을 대신해 이야기를 전하고, 힘들 때 조언을 해주는 자리라고 생각해요. 최대한 선수 편에 서서 이야기를 할 것이고, 제가 선수 때 느꼈던 어려움에 빗대어 더 좋은 환경에서 운동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할 것 같아요.
Q. 선수위원 명단 면면이 화려합니다.
단톡방이 만들어졌다고 했잖아요. 이름만 들어도 아는 선수들이 많더라고요. 차준환, 김우진 선수 등 너무 대단한 선수들이에요. ‘내가 여기에 있는 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승주 선수도 최고 아니었나요?) 전 그냥 열심히 했던 선수였어요(웃음). 다 같이 모이면 신기할 것 같아요. 다 다른 종목이잖아요. 여러 종목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저도 생각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고 느껴요.
“은퇴? 아쉽죠. 그러나 제 선택이죠”
표승주에게 후회와 미련은 없다
Q. 다른 주제로 넘어가 볼까 해요. 2024-2025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게 됐습니다. 향후 몇 년은 제 기량을 보여줄 수 있는 승주 선수이기에, 지금도 많은 분들이 은퇴를 아쉬워하는데요. 승주 선수의 마음은 어때요.
지금까지는 정신없이 여행 다니고, 다른 일도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니 지루할 틈이 없어요. 물론 아쉬운 마음이 크죠. 그러나 언제 그만둬도 아쉬운 건 똑같잖아요. 어찌 됐든 그만두기로 결정했으니, 그걸 받아들여야죠. 아쉬움에 사로잡혀 살 수는 없잖아요. 더 뛰면 뛸 수 있었겠지만, 모든 건 제 선택이에요. 이 선택에 후회가 남지 않게, 제2의 삶을 잘 살면 되지 않을까요. 아쉬운 마음은 있을지언정, 후회와 미련은 없어요.
Q. 은퇴했을 때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울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부모님은 제가 은퇴를 할 거라 생각했대요. 마음의 준비를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가족들, 남편과 시간을 보내야죠. 그리고 시아버님이 저를 위해 판다 케이크를 사 오셨는데요. 판다가 많은 사랑을 받는 동물이니까 저도 제2의 인생 많은 사랑을 받으며 살아갔으면 좋겠대요. 많이 울컥했어요. 또한 최근에 친언니 집에 갔는데 ‘너의 삶 응원하고 항상 행복해야 해’라고 하는데 그때 또 울컥했어요. 주변에서 다들 축하해 주니까, 잘 살았다는 마음이 들어요. 또 늘 제 옆에 가족들이 든든하게 있다는 걸 느끼고요.
Q. 선수 시절, 표승주란 선수는 어떤 선수였나요.
주전 도약이 많이 늦었던 선수죠. 20대 초반에는 포지션 이동도 많았고, 경기를 계속 뛰지 못했어요. 만약 저를 기억한다면, 늘 열심히 했던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어요.

Q. 데뷔 시즌인 2010-2011시즌, 2017-2018시즌 빼면 20경기 이상을 꾸준히 뛰었습니다. 비결이 있었나요.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것 같아요. 시즌 때는 쉬는 날이 많이 없어요. 만약 하루를 쉰다? 그러면 무조건 집에 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쉰다고 해서 놀면 다음날 힘들어지잖아요. 그런 식으로 계속 관리를 했어요. 비타민, 유산균 잘 챙겨 먹고요. 경기 전에는 아르기닌 먹었고요.
Q. 가장 기억에 남는 감독님이 있나요.
너무 많죠. 그래도 한 분만 뽑으라면 GS칼텍스에서 함께 했던 이선구 감독님이요. 제게 정말 많 은 믿음을 주셨어요. 물론 훈련할 때는 엄하시지만, 평소에는 편한 할아버지예요. 저를 믿어주셨고, 항상 감사한 마음뿐이죠. 요즘도 연락하며 지내요.
Q. 그럼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과 팀이 있다면요.
기억에 남는 팀은 IBK기업은행이죠. IBK기업은행에 간 후에 경기도 많이 뛰었고, 제가 잘할 수 있는 배구도 했고요. 물론 팀 성적은 아쉬웠죠. 그래도 지난 시즌 정관장에서 뛰며 생애 첫 챔프전 무대를 밟았다는 게 다행이죠.
Q. 그럼 챔프전을 처음 밟은 지난 시즌이 가장 기억에 남는 시즌일까요.
저는 모든 시즌이 기억에 남아 남아요. 매 시즌마다 선수의 임무가 있어요. 저는 임무가 늘 달랐어요. 그래서 매 시즌이 기억에 남아요.
Q. 우승 반지 없이 은퇴하는 건 아쉽지 않나요.
많이 아쉽죠. 지난 시즌 흥국생명과 챔프전 1차전, 2차전을 패하며 벼랑 끝까지 갔지만, 3차전, 4차전을 가져오며 시리즈 원점을 만들었잖아요. 5차전 5세트 저의 큰 실수가 지금도 잔상처럼 남아요. 왜 그렇게 공을 ‘팍’ 높게 올렸을까요. ‘내가 배구를 잘 그만둔 건가’ 하는 생각까지 했어요. 원래 그런 실수를 하지 않는데 충격이 컸어요. 그러나 우승을 못했다고 해서 제 배구 인생이 실패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아요. 너무나도 아쉽지만, 매 시즌 최선을 다했으니까 좋은 기억만 갖고 있을래요.
Q. 이제 제2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어떻게 보내고 싶나요.
배구와 관련된 일들을 하고 싶어요. 제 인생에서 배구를 없애려고 해도 안 없어지더라고요. 또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게 배구고요.
Q. 프로팀 지도자가 된다면 어떤 지도자가 되고 싶으세요.
지도자는 배구에 미쳐야 된다고 생각해요. 지도자를 하게 되면 제 인생은 없어지는 거예요. 지도자는 정말 해야 될 게 많아요. 선수들도 관리해야 되고, 훈련을 어떻게 할지 연구도 해야 하고요. 경기를 어떻게 할지, 연습은 또 어떻게 할지 시즌 들어가기 전에 1년 계획을 다 짜야 해요. 제일 힘든 게 지도자라고 생각해요. 좋은 기회가 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멀리서 배구를 보고 싶어요.
Q. 2025-2026시즌부터 KBSN스포츠 해설위원으로 활동하신다고요.
사실 처음 제안받았을 때 ‘내가 무슨 해설이야’라는 생각을 했어요. 은퇴를 했기 때문에 배구에 서 잠시 멀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죠. 그런데 지금 이 시기에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나중에 후회할 것 같더라고요. 해설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후에 공책을 사서 ‘난 어떤 이야기를 전해줘야 할까’ 생각하며 막 적었어요. 여러 가지가 생각나더라고요. 선수 생활할 때는 해설위원 선배님들의 목소리보다는 경기에만 집중하며 봤잖아요. 다시 경기를 돌려 보는데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느껴요(웃음).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죠.

Q. 대한체육회 선수위원, 해설위원 말고 또 해보고 싶은 게 있나요.
현대건설에서 뛰었던 친구 (이)나연이가 유소년 배구 강사 활동을 하고 있어요. 친구 따라 몇 번 지도를 했는데요. 재밌더라고요. 배구는 시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시간 될 때마다 가서 힘도 얻고, 아이들이 좋은 기운 얻을 수 있게 잘 가르치고 싶어요.
표승주에게 배구란
“늘 제 이름 옆에 있는 배구, 진심이었어요”
Q. 표승주에게 배구란.
배구는 저에게 뗄 수 없는 수식어 같아요. 주변 사람들 모두 배구인, 지금도 배구와 관련된 일을 하고요. 배구는 제 인생과 같아요. 앞으로도 제 이름 옆에 따라다닐 것 같아요.
Q. 선수 표승주는 몇 점이었나요.
60점? 열심히는 했지만 잘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느꼈을 때 항상 뭔가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배구에 늘 진심이었고, 최선을 다했어요.
Q. 팬들에게 어떤 선수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배구에 진심이었던 선수로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그만두면서 응원도 많이 받았고, 그래서 죄송한 마음도 많이 들었어요. 너무 감사하죠. ‘난 행복하게 그만두는구나’ 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어요. 갑작스럽게 은퇴해 죄송한 마음도 들고, 그만두고 나서 감사한 마음을 더 느껴요. 그리고 선수 생활 때 못한다고 욕하신 분들도 계시지만, 그분들에게도 감사해요. 선수는 못하면 욕먹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선수는 평가받는 사람이에요. 악플도 저에 대한 관심이에요. 늘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했고, 앞으로 제2의 인생도 잘 설계해 볼게요.
Q.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강등이라는 결과표를 받아들였는데, VNL이 정말 힘든 대회거든요. 이번 대회 결과로 선수들이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 같아요. 안쓰러운 마음이 커요. 대표팀 경기를 봤는데, 하려고 하는 데도 잘 안되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잖아요. 다시 힘을 합쳐야죠. 대회에 참가한 선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모든 배구 선수 마음이 무거울 거라 생각해요. 선수들 많이 힘들 겁니다. 책임감 있는 선수들인 만큼, 예전 기억은 다 잊고 다음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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