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데일리 = 방금숙 기자] “버티는 게 손해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임대료 40% 인하를 요청하며 조정에 나선 신라·신세계면세점이 협상에 난항을 겪자 철수 가능성까지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섰다. 임대료 조정이 불발되면 수백억 적자를 떠안기보다 계약 해지를 통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다.
30일 업계에 호텔신라(신라면세점)과 신세계디에프(신세계면세점)은 지난 4~5월 법원을 통해 임대료 조정 신청서를 제출했지만, 인천공항공사는 “입찰 형평성과 배임 소지” 등을 이유로 지난달 30일 열린 1차 조정 참여를 거부했다.
오는 8월 14일로 예정된 2차 조정에도 같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호텔신라와 신세계디에프는 인천공항 제1·2여객터미널에서 화장품·향수·주류·담배 등 주요 카테고리 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 입찰을 통해 체결한 10년 장기 계약에 따라 매달 약 270억~300억원 규모의 임대료를 납부하고 있다. 임대료는 출국자 수에 연동해 신라 1인당 8987원, 신세계 9020원의 수수료가 책정된다.
문제는 코로나19 이후 여객 수는 회복됐지만, 면세점 매출은 팬데믹 이전 대비 70%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중국 단체관광객 부재, 고환율, 면세 소비 패턴 변화 등으로 인해 매출은 정체된 반면, 임대료는 여전히 고정비 수준으로 작동하면서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실제로 지난해 기준 신라면세점과 신세계면세점은 각각 697억원, 359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1분기에도 각각 67억원, 17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올해 6월 국내 면세점 매출은 1조854억원으로 전년 대비 9.5% 감소했으나 이용객 수는 253만 명으로 7.1% 증가했다. 판매 부진에도 인건비와 임대료 등 고정비 부담이 커지면서 면세업계는 구조조정과 희망퇴직 등 생존 전략에 돌입한 상태다.
신라·신세계 측 법률대리인은 “우리가 주장하는 건 일방적인 40% 인하가 아니라 실제 매출 상황에 맞춘 적정 임대료 재산정”이라며 “협상이 결렬된다면 지금처럼 적자가 누적되는 구조에선 1년치 임대료를 위약금으로 감수하고라도 철수를 하는 게 이익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두 회사가 철수하고 공사가 재입찰을 하더라도 시장 상황상 공사도 임대료를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조정을 통해 열심히 협상해 보고 그래도 공사가 손해라고 판단되면 그때 결정해도 늦지 않다. 전체 이익을 위해서라도 최소한 조정 테이블에는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면세업계 안팎에서도 인천공항공사의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공사 수익의 60%가 면세점 등 비항공 수입인데, 시장 상황을 외면한 채 기존 조건만 고수하는 건 책임 회피”라고 지적했다.
해외 주요 공항 중에서도 시장 변화에 대응해 유연한 임대료 조정에 나서는 곳이 있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은 최근 일부 사업자의 임대료를 15% 인하했고, 개별 매장과도 임대 조건 조정을 병행하고 있다. 상하이 푸동공항 역시 임대료 최소보장액을 기존의 23% 수준으로 낮추고, 매출에 연동한 구조로 전환했다.
임대료 인하 요구에 타당성에 대한 이견도 존재한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입찰에 자율적으로 참여한 계약인데 지금 와서 불리하다고 조정해 달라는 건 제도 훼손 우려가 있다”며 “사전 수요예측을 통해 운영가능한 수준의 입찰가를 제시했던 업체가 (지금 입점사가 주장하는 무리한) 높은 가격을 제시하는 곳에 졌는데 이제 예상된 적자가 난다고 임대료를 낮춰준다면 불공정해지는게 아닌가”하고 꼬집었다.
현재 인천지법은 면세점 임대료의 적정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삼일회계법인 등 외부 기관에 ‘감정촉탁결정’을 의뢰했다. 감정 결과는 8월 초에 나올 예정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조정 절차는 공사 측 불참 여부와 무관하게 진행되므로 이 감정 결과가 향후 협상 재개 여부를 가를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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