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종종 밝고 화려한 조명과 함께 웅장한 소리로 가득한 건물 하나가 눈에 띈다. 바로 일본만의 독특한 오락 문화인 '빠칭코(Pachinko)'이다. 빠칭코는 단순한 게임을 넘어 일본인의 일상과 세대 문화를 반영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일본 가고시마의 한 파칭코(Pachinko) 홀을 찾은 평일 오후, 입구를 들어서자 금속 구슬 튀는 소리와 함께 기계마다 설치된 화려한 LED 조명이 눈을 사로잡았다. 한참을 둘러보다 문득 시선을 붙든 건, 회색 머리의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 조용히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특히, 눈길을 끄는 점은 이 게임이 단순히 젊은 층만의 놀이가 아닌, 중장년층은 물론 70~80세의 노년 부부들도 함께 즐기는 여가 활동이라는 점이다. 눈에 띄는 것은 머리가 희끗한 노부부들이 나란히 앉아 대화를 나누거나 조용히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다.
그들은 "결혼 전부터 함께 다녔어요"라고 말했다. 요즘도 일주일에 두세 번쯤 파칭코를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는 그들의 말에선 어떤 일상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파칭코는 일본의 고유 오락 문화다. 핀볼과 슬롯머신의 특성을 합쳐, 구슬을 조작해 점수를 얻고 이를 상품으로 교환하는 방식. 일본 법상 도박은 금지돼 있지만, 파칭코는 이를 절묘하게 우회한 구조 덕분에 '합법적 오락'으로 유지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중독성 있는 게임이라는 비판도 있지만, 오늘 이곳에서 본 풍경은 조금 달랐다.
파칭코 홀은 더 이상 어두운 분위기의 골목 안 게임장이 아니다. 인기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운 화려한 인테리어와 쾌적한 시설, 젊은 층의 관심을 유도하는 콘텐츠와 고객 응대까지 문화공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는 여전히 노년층, 특히, '함께 오는 노부부'가 있다.

파칭코를 단순한 '놀이'라 말하기엔, 그 안에 담긴 일상의 무게가 묵직하다. 젊은 시절 함께 시작한 취미가 퇴직 후까지 이어지고, 그 속에서 삶의 리듬을 함께 조율하는 부부. '같은 공간, 같은 취향,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나이 들어간다는 건 생각보다 큰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일본의 빠칭코 문화는 '평생 취미'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다. 젊은 시절 즐기던 취미를 노년에도 꾸준히 이어가는 삶의 방식은 일본인 특유의 꾸준함과 성실함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는 단순한 시간 때우기를 넘어, 삶의 질을 유지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자리 잡았다.
"요즘은 TV보다 이게 더 재밌어요. 말없이도 같이 있고요."
현장에서 만난 한 70대 여성의 말은 오래도록 귀에 남았다. 놀고, 말하고, 쉬는 공간으로서 파칭코가 그들에게 단순한 유흥 그 이상인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고령화와 여가의 의미가 중요해지는 시대, 일본의 빠칭코 문화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법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젊은 날의 취미를 공유하며 황혼기를 살아가는 일본의 노부부들, 그들의 모습은 한국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함께 놀고 함께 늙어가는 삶", 그것이 일본 빠칭코가 보여주는 삶의 또 다른 풍경이다.
한국에도 고령사회가 본격화되고 있다. 우리는 어떤 '공간'과 '취미'를 준비하고 있을까. 그리고 누군가와 그것을 함께할 수 있을까. 일본의 파칭코 홀에서, 삶의 또 다른 힌트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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