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인의 반걸음 육아 74] 케첩을 찍은 감자튀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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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김혜인] 아이가 섭식 치료를 받는 동안 나는 창문으로 이를 관찰한다. 아이는 치료사 지도하에 밥을 먹는다. 수월하게 먹을 때도 있지만 오랫동안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연구에 따르면 발달 장애 아동 중 약 70%에서 섭식 문제가 나타난다. 자폐 아동은 맛과 냄새, 질감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일반 아동에 비해 편식이 심하다.

내 아이는 한식을 거부한다. 어린이집에 간 지 1년이 넘도록 점심 식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 학령기가 되어서도 학교 급식을 안 먹어 탈진해서 쓰러지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섭식 치료를 시작했다.

아이는 이제 집에서 하루 한 끼는 밥과 반찬으로 구성된 식사를 한다. 어린이집에서 다른 반찬은 모두 거부하지만 맨밥과 김은 먹는다. 섭식 치료를 하지 않았다면 이만큼 나아지기 어려웠으리라 여긴다.

하지만 섭식 치료 때 아이가 괴로운 비명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날에는 또 결론이 나지 않는 고민을 한다. 편식을 아이 고유 특성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치료 대상으로 봐야 할까?

최근 BBC 과학 전문기자 수 넬슨(Sue Nelson)이 쓴 <자폐증: 내 어린 시절 습관을 이해하다>를 읽은 뒤 그 고민은 더 깊어졌다. 그는 60세가 되어서야 뒤늦게 자폐증 진단을 받았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는 편식 문제도 있다. 그는 어릴 적 오직 토마토수프와 초콜릿 푸딩만 먹었다고 한다. 지금도 여전히 질감이 있는 크런치 칩을 넣지 않으면 으깬 달걀 샌드위치를 먹기 어렵고, 으깬 감자 위에 화이트소스를 뿌린 흰 살 생선을 생각하면 속이 메스껍다고 한다.

수 넬슨 부모는 그의 편식을 포용하고 문제 삼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를 ‘다행히’라고 표현했다.

나는 한식을 거부하는 아이 특성을 받아들이기보다 섭식 치료를 선택했다. 우리 사회가 적어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편식을 수용하기보다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는 분위기라는 점도 섭식 치료를 선택하게 한 요인이었다.

전에 일명 ‘돈가스 소스 사건’이 기사화된 적이 있다. 한 엄마가 자녀가 체험학습 중 겪은 일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게 여러 커뮤니티로 퍼지며 논란을 일으켰다.

사건은 이랬다. 학교 체험학습에서 점심 메뉴가 돈가스였는데, 아이가 돈가스 소스를 못 먹으니 빼달라고 요청했으나 교사는 “네가 못 먹는다고 너만 다르게 할 수 없다”며 거절했다. 아이는 소스가 덜 묻은 밥만 소량 먹은 뒤 과자로 끼니를 때웠다.

사람들이 저마다 말을 보탰다. 공동체 활동에서 개개인의 모든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든가, 한 명만 들어주기 시작하면 요청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난다든가, 알레르기가 있는 게 아니면 참고 먹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반면에 아이 요청은 간단한 사항이었고 자립적 의사 표현임에도 무시됐다며 교사 융통성이 부족했다는 비난도 있었다.

이게 아이가 살아야 할 세상이다. 아이는 감자튀김과 케첩을 좋아한다. 그러나 감자튀김을 케첩에 찍어 주면 분노발작을 일으킨다. 그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세상이 아무리 다정하게 변해도 세상은 아이 마음의 가시를 알 수 없다. 아마도 그 때문에 남보다 더 많이 부딪치고 싸우거나 포기하거나 받아들이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나는 ‘돈가스 소스 사건’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르다는 의견을 내지 않았다. 단지 내 아이도 앞으로 이와 똑같은 사건을 겪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김혜인. 중견 교사이자 초보 엄마. 느린 아이와 느긋하게 살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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