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포르쉐에게 독일 라이프치히란? 포르쉐의 전동화 심장일지 모른다.
독일 동부 작센주 라이프치히 외곽. 정적을 깨는 쇳소리와 전동 드릴의 진동이 끊이지 않는 포르쉐 라이프치히 팩토리는 단순한 자동차 공장이 아니다. 마치 생명체처럼 스스로 숨 쉬고 진화하는 '기술 유기체'다. 포르쉐가 "미래를 조립하는 곳"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2000년 단출한 조립 공장(assembly plant)으로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약 19억유로가 투자됐으며, 현재는 연간 수십만 대의 마칸과 파나메라를 조립하는 '풀 팩토리(full factory)'로 거듭났다. 볼모지였던 이곳이 이제는 포르쉐의 글로벌 전동화 시대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현재 포르쉐 라이프치히 팩토리는 3교대 체제로 운영되며, 공장 임직원 수는 4000명을 넘어섰다. 2002년 가동 이후 지금까지 누적생산량은 200만대를 넘어섰다.
2024년 다섯 번째 플랜트 확장을 완료한 가운데 단순한 자동차 조립 공장을 넘어 전동화 시대의 최전선으로 진화해왔다. 내연기관, 하이브리드, 순수 전기차까지 하나의 생산 라인에서 모두 생산할 수 있는 세계적 유연성을 갖췄다. 하나의 라인에서 다양한 심장을 달리게 만드는 '혼합 생산의 성지'인 이곳에서는 포르쉐의 과거와 미래가 매 순간 맞부딪힌다.
이처럼 포르쉐 라이프치히 팩토리는 그저 전기차 몇 대를 찍어내는 공장이 아니다. 전기 파워트레인 생산의 전초기지이자, 포르쉐의 지속가능한 생산 철학이 구현된 실험실이다. 단순 통합을 넘어 완성차 생산의 경계를 허무는 수준에 도달했다. 전동화 시대에도 포르쉐가 제조 기술을 통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이유다.
공장 내부에서는 매일같이 수백 대의 차량이 조립된다. 기계는 정교하게 조립을 반복하고, 사람은 데이터를 토대로 품질을 조율한다.

지난해부터는 신형 마칸 일렉트릭의 생산도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특히 신형 마칸의 생산이 본격화되며 포르쉐는 또 하나의 혁신을 시작했다. 바로 액슬 사전 조립 공정의 통합이다. 이 공정을 통해 라이프치히 팩토리는 단순 조립을 넘어 부품 생산의 정밀도와 공정 효율성까지 끌어올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신형 파나메라의 액슬도 함께 조립되고 있다.
팩토리 인근에 위치한 이 액슬 사전 조립 시설은 1만5000㎡ 규모에 달한다. 내부에는 총 24개의 생산 시스템, 24개의 취급 장비, 53개의 체결 기술 시스템이 배치돼 있다. 최대 43대의 차량을 동시에 운반할 수 있는 거대한 컨베이어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기계를 뛰게 만드는 것, 결국은 사람의 손끝에서
포르쉐 라이프치히 팩토리를 둘러보면 금세 깨닫게 된다. 이 거대한 설비들 사이에서 진짜 기계처럼 움직이는 것은 결국 사람이라는 사실을.
"자동차는 결국 사람이 만든다." 이 흔한 진리를 가장 진지하게 여기는 기업 중 하나가 포르쉐다. 포르쉐는 자신들의 핵심 성공 요인으로 '사람'을 꼽는다. 열정과 개척정신, 성과와 유대감을 바탕으로 뿌리내린 기업 문화가 포르쉐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원동력인 셈이다.

그리고 '포르쉐 아이디어 매니지먼트(Porsche Ideas Management)'는 그 상징이다. 포르쉐 아이디어 매니지먼트는 포르쉐 직원이라면 누구든 아이디어를 제안할 수 있고, 그것이 실제 프로젝트로 반영된다. 마치 한 명 한 명이 'R&D 팀장'인 것이다.
신입 교육 시스템도 독특하다. 미래에도 지속적인 성공을 이어가기 위해 매년 기술에 대한 열정과 역량을 갖춘 30명의 젊은 인재들이 '직업 학교+포르쉐 실무'라는 이중 교육 과정을 밟는다. 졸업하면 고등학교 졸업자격과 숙련 기술자 자격을 동시에 얻는다. 성별과 관계없이 모든 기술직에 지원 가능하다.
"자동차를 배운다는 건 단순히 기계를 이해하는 게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기술을 몸으로 익히는 거예요." 포르쉐는 이렇게 사람을 키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다시 포르쉐를 움직인다.
◆한 줄의 기적, 혼합 생산의 미학
포르쉐 라이프치히 팩토리는 단순한 조립 공장이 아니다. 앞서 설명했던 것처럼 △내연기관 △하이브리드 △순수 전기차를 한 줄에서 만들어내는, 그야말로 다재다능한 조리법을 가진 주방 같은 곳이다. 차체가 완성되고, 색이 입혀지고, 심장에 해당하는 파워트레인이 이식되기까지 모든 순간은 마치 미슐랭 셰프의 키친처럼 정제돼 있다.

차체가 태어나는 순간, 포르쉐는 그것을 '출생증명서(특정 식별 코드가 담긴)'라고 부른다. 차량마다 부여되는 이 고유 식별 코드는 차의 DNA다. 그 DNA에 따라 필요한 모든 사양이 결정되고, 부품과 색상, 고객이 지정한 옵션까지 전 과정을 이끈다.
도장 공정은 또 하나의 하이라이트다. 겉으로는 칙칙, 바르기만 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여섯 단계의 복잡한 화학이 뒤섞인다. 세척부터 방청, 음극 침지 도장, 실링, 프라이머를 거쳐 고객이 선택한 색이 입혀진다. 최종 클리어 코트가 입혀질 땐 LED 라이트 터널 속에서 숙련된 전문가의 눈과 로봇이 협업해 매끈한 피부를 검사한다.
무엇보다 포르쉐 라이프치히 팩토리에서는 포르쉐 생산의 하이라이트라고 불리는 단계가 있다. 바로 '메리지(Marriage)'다. 이는 차체와 완성된 파워트레인이 완전 자동화된 방식으로 결합되는 과정이다. 고도로 복잡한 린 혼합 생산(lean mixed production)으로, 라이프치히에서는 이 결합 공정이 다양한 모델이 적용 가능하도록 다재다능하고 유연하게 설계돼 있다.
예를 들어 공중에 떠 있는 차체와 지하에서 올라온 파워트레인이 정확히 1초의 오차도 없이 결합되는 순간, 포르쉐의 심장이 처음으로 제자리를 찾는다. 이 장면은 마치 수술실에서 심장 이식 수술을 지켜보는 느낌이다. 조용하지만,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른다.

조립 라인에서는 도어가 붙고, 시트가 들어가고, 헤드라이트가 장착된다. 마지막 순간 포르쉐의 상징인 크레스트가 보닛에 얹어진다. 한 대의 자동차가 아닌, 한 마리의 생명체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이후 품질 보증을 위한 중요한 절차인 감사(audit)가 진행되고, 시운전을 마치면 차량은 포르쉐의 품을 떠난다. 전 세계로 향하는 그 여정의 첫걸음은 공장 옆 철도에서 시작된다. 이 철도는 100% 친환경 전기로 운영되며, 공장에서 출발한 차량의 약 70%를 실어 나른다.
◆흐트러짐 없는 생산, 보이지 않는 물류의 기술
포르쉐 라이프치히 팩토리에서 포르쉐가 흐트러짐 없이 생산되는 건, 그 뒤에서 쉼 없이 움직이는 물류시스템 덕분이다.
이곳에선 물류가 단순한 지원 부서가 아니다. 말 그대로 생산의 페이스메이커다. 차량마다 사양이 다르고, 장착되는 부품도 천차만별인 상황에서 정확한 시점에 정확한 부품이 정확한 차량에 도착해야 한다. 이건 그냥 배송이 아니라 기술이다.

조립 공장 생산은 적시 생산(Just-in-Time)을 넘어 순차 생산(Just-in-Sequence)이라는 정밀한 리듬 위에서 운영된다. 공급망 전반에 걸쳐 마치 오케스트라처럼 조율된 이 시스템은 부품 하나하나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정해진 시간에 정확히 도착하도록 만든다. 조율되고 안정된 주문 순서는 즉시 조립 가능한 부품만이 해당 라인에 납품되도록 보장한다.
이런 흐름을 주도하는 건 당연히 기계들이다. 자동 소형 부품 저장 시스템(AKL)은 단순한 창고가 아니라, 일종의 고속 셔틀 허브다. 약 90대의 셔틀이 저장소 사이를 날아다니듯 움직이며, 부품을 터거 트레인에 싣는다. 이 셔틀들은 빠르기만 한 게 아니라 기존 방식보다 30% 이상 에너지를 절감하는 똑똑한 친구들이다.
또 셔틀이 빠르게 일감을 소화하는 사이에 자율주행 운반 차량(FTF)은 조용히, 정확하게 조립라인까지 콕핏과 시트를 실어 나른다. 그리고 동적 피킹(Dynamic Picking) 시스템은 부품을 자동으로 골라 카트에 싣고, 직원들이 멀리 가지 않도록 한다. 덕분에 저장용량은 늘고, 직원의 이동거리는 줄었다. 다리 아플 일도, 동선 헷갈릴 일도 없다.
이처럼 포르쉐 라이프치히 팩토리는 단순한 조립 공장을 넘어선다. 이곳은 포르쉐가 브랜드의 철학과 미래 그리고 기술을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공간이다. 그 안에서 매일같이 태어나는 포르쉐들은 '달리는 기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포르쉐의 기술이자 예술이고, 기계이자 감성이다. 그리고 포르쉐 라이프치히 팩토리는 그 모든 경계조차 의미 없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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