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극지인⑬] 변화무쌍 남극 바다, 바다 사나이가 접수하다

시사위크

얼음의 땅 ‘남극’은 흔히 ‘미지의 대륙’이라 불린다. 인류의 손길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끝’ 남극에서 지구의 미래를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남극세종과학기지의 월동연구대와 하계연구대가 그들이다. 거대한 빙하, 바다를 떠도는 유빙,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의 강한 블리자드(눈보라). 어떤 위험에도 그들은 남극을 지킨다. 우리는 이들을 ‘국가대표 극지인’라 부르기로 했다. 시사위크 남극특별취재팀이 남극세종과학기지를 찾아 그들을 만나봤다. [남극특별취재팀=김두완 기자, 박설민 기자]

해군 SSU 포화잠수통제사로 근무하다 세종기지로 파견온 황대하 원사(진)는 해군에서 27년째 근무중인 현역 군인이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해군 SSU 포화잠수통제사로 근무하다 세종기지로 파견온 황대하 원사(진)는 해군에서 27년째 근무중인 현역 군인이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위험한 여정, 적은 임금, 혹한, 몇 달간 완전한 어둠, 끊임없는 위험, 무사 귀환 불확실,

성공 시 명예와 영광.

- 어니스트 섀클턴 벌링턴(‘제국 남극 횡단 탐험대’ 공고, 1914년 3월) -

시사위크|남극=남극특별취재팀  남극 바다는 변화무쌍하다.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불면 높은 파도와 함께 떠내려온 유빙이 금세 남극 바다를 얼음 바다로 만든다. 얼음장 같은 바닷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거대한 빙하는 방문자들을 위협한다. 그 때문에 남극에서 연구를 하려면 해상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 험난한 바다에서 대원들의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은 바로 황대하 해상 안전 대원이다. 해군 SSU 포화잠수 통제사로 근무하다 세종기지로 파견나온 황대하 원사(진)는 해군에서 27년 근무한 바다 사나이다. 시사위크 남극특별취재팀은 혹독한 날씨와 예측할 수 없는 남극의 바다에서 대원들의 해상 안전을 책임지는 남극세종과학기지(이하 ‘세종기지’)의 황대하 대원을 만나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해상 안전 대원의 하루로 들어가 봤다.

◇ 해군 해난구조대 ‘SSU’ 대원이 남극에 온 이유

남극의 여름 12월. 이른 아침부터 월동대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육상에 올려놨던 조디악(고무보트)을 중장비를 이용해 해상으로 옮기고, 전신 슈트 구명복을 입는 등 운항 준비를 한다. 보통은 연구자들이 세종기지에서 해상으로 이동해야 하는 △위버 반도 △포터 소만 △마리안 소만 등에서 생태 연구를 진행하기 때문에 연구자들이 요청하면 월동대원들은 항상 이렇게 준비한다.

해상 이동 임무가 떨어지면 가장 분주한 대원이 황대하 대원이다. 조디악 운전을 담당하고 하고 있기 때문에 GPS 지도를 보며 이동해야 할 위치를 미리 숙지하고, 해상 이동 인원을 점검하는 등 운항을 위한 사전 준비로 바삐 움직인다.

황대하 대원은 동력수상레저기구자격증(조종면허 일반조종 1급)과 소형선박 조종사 자격증을 보유해 해상 업무 시 조종사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황대하 대원은 동력수상레저기구자격증(조종면허 일반조종 1급)과 소형선박 조종사 자격증을 보유해 해상 업무 시 조종사 업무를 도맡아 하고 있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사실 황대하 대원은 △동력수상레저기구자격증(조종면허 일반조종 1급) △소형선박 조종사 △잠수 기능사 및 산업기사 등 다양한 자격증을 보유한 능력자다. 더군다나 190cm 가까운 큰 키에 해군 해난구조대 출신이라는 그의 이력은 이 험난한 남극에서 생명을 의지해도 될 만큼 큰 믿음을 준다.

황대하 대원은 “해군에서 생활하면서 했던 업무들을 계속 적용해 세종기지 해상 안전에 대한 전반적 업무를 맡고 있다”며 “세종기지가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연구자들이 해상으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해상 안전 대원으로서 최대한 안전하게 해상 이송 업무를 진행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종기지의 해상 안전 대원은 ‘극지연구소(KOPRI)’에서 직접 고용한 인력이 아니다. 해군에서 해마다 파견하는 현역 군인이 해상 안전의 임무를 맡는다. 세종기지에 해군이 파견된 것은 2009년 해군특수전전단(UDT)이 처음이었다. 이후 ‘해군 해난구조대(SSU)’에서도 선발, 파견되면서 해군 특수부대 대원들이 남극에 있는 한국과학기지의 해상 안전을 책임지고 있다.

황대하 대원이 속한 SSU(Sea Salvage & Rescue Unit)는 ‘살아만 있어다오, 우리가 간다’라는 구호로 유명한 해군 특수부대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고 등 대형 해상 재난 현장 인명 구조 및 수색 작전에 투입된 이력이 있다. 그뿐만 아니라 어선 침몰, 해상 조난 등 크고 작은 해양 사고 현장에도 SSU 대원들의 손길이 닿는다.

사진은 해상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원을  세종기지 근처에 위치한 마리안소만으로 이송하기 위해 황대하 대원이 조디악을 운전해 이동하는 모습이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사진은 해상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원을 세종기지 근처에 위치한 마리안소만으로 이송하기 위해 황대하 대원이 조디악을 운전해 이동하는 모습이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어렵고 위험한 작전에 투입되기 때문에 SSU 대원들은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훈련 중 많은 인원이 이수하지 못하고 탈락해 최종 선발되는 대원은 절반 정도만이 최정예 대원으로 선발된다고 알려져 있다.

SSU 대원들은 대부분 포화잠수체계(깊은 수심에서 장시간 잠수를 가능하게 하는 기법)를 통해 수중구조작전을 수행하는 베테랑 잠수사들이다. 황대하 대원은 심해잠수사(Deep Sea Diver)를 포화잠수체계에서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통제하는 역할인 심해잠수 통제관으로 남극에 오기 전까지 근무했다.

그가 바다에서 보낸 세월은 존경 그 자체다. 청해진함, 통영함 등의 함정 생활을 비롯해 △북한 미사일 발사체 인양 작전 △연평도 폐어망 수거 등 다양한 작전에 투입돼 많은 역할을 했다. 포화잠수 교관으로 많은 교육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진정한 바다 사나이가 남극 바다에 온 셈이다.

◇ SSU도 긴장시킨 ‘남극 바다’

누구보다 뛰어난 전문가지만 황대하 대원에게도 남극 바다는 결코 쉬운 곳이 아니다. 특히 바다를 떠다니는 얼음덩어리인 ‘유빙(流氷)’은 세종기지 해상 임무에서 가장 큰 위협이다. 유빙 하나의 무게가 수백kg이 넘는다. 그뿐만 아니라 바닷물에 깎인 얼음은 매우 날카롭다. 때문에 조디악이 이 유빙에 부딪히면 프로펠러가 고장 나거나 보트가 찢겨 침몰할 수 있다.

황대하 대원이 세종기지 앞 부두에 접안한 소형선박을 육상으로 인양하기 위해 중장비에 루프를 연결하는 모습이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황대하 대원이 세종기지 앞 부두에 접안한 소형선박을 육상으로 인양하기 위해 중장비에 루프를 연결하는 모습이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실제로 남극과 북극, 극지의 유빙은 매년 수많은 해양 사고를 발생시키는 주범 중 하나다. 실제로 스발바르 대학센터(UNIS) 연구진이 러시아 북극 해빙 선박사고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러시아 지역 내 해양 사고 대부분은 극지 유빙이 원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오래된 빙하가 무너져 발생한 ‘다년생 유빙’의 경우 그 피해가 더 컸다. 오랜 시간 압축돼 일반 얼음보다 단단하고 무겁기 때문이다.

최근 지구온난화가 심해지면서 그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극지의 빙하가 붕괴하면서 엄청난 양의 유빙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취재팀이 세종기지에 머무는 동안, 기지 인근에 있는 마리안소만 빙벽이 무너져 매일같이 엄청난 양의 유빙이 쏟아져 내렸다.

황대하 대원은 “바닷바람은 늘 거칠고 위험하지만, 남극은 한국에서 부는 것과 너무 다르다”며 “유빙이라는 새로운 장애물도 생겨 해상 업무 환경이 굉장히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유빙은 너무 무겁고 크고 날카롭고 단단해 보트가 손상될 가능성이 높아 위험하다”며 “연구원분들을 지원하기 위해 마리안소만, 포터소만 등 거대 빙벽으로 다가갈 경우 빙하가 무너져 생긴 유빙이 많아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기지 구명복을 보관하는 컨테이너 앞에서 황대하(사진 가운데) 대원이 취재팀에게 환하게 미소지으며 엄치척을 해주는 모습이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세종기지 구명복을 보관하는 컨테이너 앞에서 황대하(사진 가운데) 대원이 취재팀에게 환하게 미소지으며 엄치척을 해주는 모습이다. / 사진=남극특별취재팀

차가운 바닷물도 남극 생활을 위협하는 요소 중 하나다. 남극해의 해수 온도는 평균 -2~0°C 수준이다. 물은 공기보다 열전도율이 수십 배 높아 훨씬 더 빠르게 체온이 내려간다. 만약 남극 바다에 빠질 경우 15분 내로 저체온증이 발생하고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 또한 조디악으로 이동 중 몸에 차가운 바닷물이 튀어도 저체온증이나 동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황대하 대원은 “남극에서는 물에 빠지면 안 움직이는 게 중요한데 체력, 체온 손실을 줄일 수 있어서다”라며 “만약 물에 빠졌다면 위치가 확인될 때까지 자기 위치를 정확히 알려야 하며 여럿이 움직여 조난 사실을 빨리 알리는 것이 필수다”라고 말했다.

황대하 대원은 “하사 시절 강원도 고성에 파견을 나갔는데 5살 아이가 물에 빠진 것을 목격했다”며 “동료들과 함께 아이를 무사히 구조했고 그때의 기쁨과 보람이 지금까지 SSU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SSU에 있다 보니 해외 근무를 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며 “40대 중반이 지난 지금 삶의 변화를 주고 싶다는 마음과 군인이 아닌 다양한 분들을 만나 일해보고 싶어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대를 지원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 박설민 기자, 김두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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