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위크=이영실 기자 40여 년간 감정 없이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방역해 온 60대 킬러 ‘조각’(이혜영 분)은 ‘대모님’이라 불리며 살아있는 전설로 추앙받지만 오랜 시간 몸담은 회사 신성방역에서도 점차 한물간 취급을 받는다. 평생 ‘조각’을 쫓은 젊고 혈기 왕성한 킬러 ‘투우’(김성철 분)는 신성방역의 새로운 일원이 되고 조각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스승 ‘류’(김무열 분)와 지켜야 할 건 만들지 말자고 약속했던 ‘조각’은 예기치 않게 상처를 입은 그날 밤 자신을 치료해 준 수의사 ‘강선생’(연우진 분)과 그의 딸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고 ‘투우’는 그런 낯선 ‘조각’의 모습에 분노가 폭발하는데…
영화 ‘파과’(감독 민규동)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 년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액션 드라마다.
구병모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제75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스페셜’ 섹션에 이어 제43회 브리쉘 판타스틱 영화제 등 해외 유수 영화제들의 초청을 받으며 일찌감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영화 ‘허스토리’ ‘내 아내의 모든 것’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섬세한 연출력을 보여준 민규동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배우 이혜영·김성철·연우진·김무열·신시아 등이 출연해 강렬한 시너지를 완성한다.

전형적인 장르 연출을 탈피하는 민규동 감독은 이번에도 자신의 강점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유례없는 캐릭터 설정과 독창적 액션을 중심으로 인간 내면을 밀도 있게 파고드는 강렬한 서사를 완성, 장르적 재미와 감정적 흡입력을 모두 잡으며 러닝타임 내내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영화는 나이 든 킬러를 통해 인간의 ‘쓸모’와 ‘나이 듦’, ‘존재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며 다소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이를 전달하는 방식이 난해하거나 난삽하지 않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게 한다. 소설을 그대로 옮긴 듯한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표현, 대사들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으나 그래서 더 곱씹게 하는 매력도 있다.
액션에도 ‘파과’만의 무드가 고스란히 담겼다. 단순히 서로를 쫓고 죽이는, 자극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인물의 감정과 삶이 녹아든 치열한 몸부림으로 감각과 감정을 건드린다. 액션 영화로서의 장르적 쾌감도 놓치지 않는다. 특히 60대, 여성이라는 신체적 한계를 지닌 ‘조각’의 액션은 세월을 통해 얻은 노련함을 주요 포인트로 잡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치명적인 결과를 만드는 방식으로 영리하게 설계, 스타일리시하고 ‘진짜’처럼 느껴지게 한다.

캐릭터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모든 킬러들이 추앙하면서도 두려워하는 전설의 킬러 ‘조각’부터 그를 쫓는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 ‘조각’이 지키고 싶은 존재가 되는 ‘강선생’, ‘조각’의 스승 ‘류’ 등 주요 캐릭터는 물론, 신성방역의 운영자 ‘손실장’, 신성방역의 실무자 ‘초엽’까지 누구 하나 존재감 없는 이 없고 어느 하나 허투루 쓰이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60대 노쇠한 킬러, 게다가 여성인 ‘조각’은 전에 없던 강렬하고 독보적인 여성 캐릭터의 탄생을 알리며 단숨에 마음을 빼앗는다. 이혜영의 힘이다. “세월이 쌓인 얼굴과 눈빛, 깊이 있는 연기가 필요했다”는 민규동 감독의 말처럼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연륜과 내공으로 자신만의 ‘조각’을 빚어내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또 한 번 입증한다. 이혜영의 ‘조각’ 그 자체가 ‘시네마’다.
‘투우’를 연기한 김성철도 제 몫을 충실히 해낸다. 냉혹한 킬러의 면모부터 어딘가 불안하고 어쩐지 아이 같은 모습까지 다채롭게 표현하는 것은 물론, 강도 높은 액션과 ‘조각’을 향한 복잡미묘한 감정 연기까지 탁월하게 소화하며 몰입을 더한다. 연우진·김무열·신시아·김강우·옥자연 등도 안정적 연기로 힘을 보탠다.
민규동 감독은 “살면서 처음 마주하는, 하지만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전하며 “단순한 액션 영화를 넘어서서 어떤 삶과 특별한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파과’를 설명했다. 러닝타임 122분, 오늘(3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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